얼마전 남편이 TV를 보다 갑자기 화를 냈다. ‘코리안 드림’을 찾아 우리나라에 온 동남아 근로자들을 사업주가 혹사만 시키고 임금을 제대로 주지 않은 내용이 방영됐기 때문이다. “왜 임금을 주지 않느냐”고 항의하는 근로자에게 구타까지 했다는 것이다. 남편은 “일을 시켰으면 당연히 임금을 줘야지. 근로자들이 제 나라로 돌아가 우리나라에 대해 뭐라 하겠느냐”며 악덕 사업주를 엄벌에 처해야한다고 분노했다.나는 속으로‘이 양반이 전에는 안그러더니 요즘들어 TV를 보고 부쩍 화를 자주 내네’라고 생각하면서 남편 얼굴을 빤히 들여다 보았다. 얼굴이 붉어진 것을 보니 정말 화가 나기는 난 것 같았다.
남편이 TV나 신문을 보다 화를 내는 경우는 또 있다. 고아들이 서양인의 가정에 입양돼 행복하게 살다 양부모와 함께 고국을 방문했다는 류의 기사나 프로그램을 볼 때다.
나는 그럴 때마다 “좋은 양부모 만나 훌륭하게 성장했다는데 흐뭇해하지는 못할 망정 왜 도리어 화를 내느냐”고 핀잔을 주지만 남편은 개의치 않는다. 남편에겐 잘 돼 돌아온 모습보다는 우리나라에서 키우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과 피부색 다른 사람 속에서 받았을 이질감이 먼저 떠오르는 모양이었다.
남편이 왜 이럴까 생각해보지만 직접적인 이유는 알 수 없다. 다만 유달리 인정이 많기 때문에 안쓰런 장면을 보면 남보다 더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게 아닌가 싶다.
그리고 남편의 인정은 묘하게도 우리 민족에 대한 우월감과 연결돼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남편은 단군의 자손으로 태어난 것을 축복이요, 자랑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서구의 합리주의보다 우리나라의 인정주의를 더 선호한다. 사실 동남아 근로자나 해외 입양아 문제에 남편이 그렇게 화를 내는 데도 “잘난 우리 민족이 이래서야…”하는 식의 의식이 깔려있다.
하지만 그런 우월주의가 좋게만 보이지는 않는다. 어느 민족이든 고유의 전통과 가치가 있으므로 어느 것이 어느 것보다 더 낫다는 식의 생각에 동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남편의 고지식한 우월주의가 빨리 허물어져 TV앞에서 공연한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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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옥희 광주 북구 일곡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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