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규 통일부장관은 4일 국회 한 연구단체의 조찬 간담회에서 남북정상회담의 생생한 뒷얘기들을 소개했다.박장관에 따르면 김대중 대통령이 이산가족 문제를 제기하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헤어진 지 50년이나 됐는데 또 만나서 뭘하느냐. 통일돼서 만나면 되지”라고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이에 김대통령은 “김위원장은 효심이 지극하고 어른을 공경한다고 알고 있다”며 간곡히 설득했고 김위원장은 “통 크게 하자”며 전격적으로 수용 의사를 밝혔다.
공동선언 서명과 관련, 북측은 처음에는 정상이 아닌 다른 책임자가 서명하는 안을 냈고 다음에는 직함없이 ‘김정일’이름만 쓰겠다고 버텼다.
하지만 김대통령은 “어제부터 회담을 계속했는데 이렇게 하려고 그랬는가. 이것을 갖고는 남한에 못 돌아간다”며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
결국 1시간여의 대치끝에 김위원장쪽에서 “전라도 고집에 졌다”며 두 손을 들었고 김위원장은 만찬때 “나도 고집이 센 데 대통령 고집에 손 들었다”고 농을 했다.
하지만 김위원장은 서명식이 끝난 뒤에는 “서명했으니 반드시 지키겠다”는 말을 10번 이상 반복하며 6·15공동선언 실천을 다짐했다고 한다.
박장관은 이어 김대통령이 김위원장에게 남북간 무력충돌 등에 대한 ‘유인물’을 넘겨줬다고 소개했다. 김대통령은 “핵 미사일등 대량살상무기의 개발은 북한의 경제에 도움이 안 된다”고 강조했고 김위원장은 “맞다”는 반응을 보였다. 김위원장은 이 과정에서 지난 해 서해 교전에 대해 “상부의 지시를 안 받고 한 일”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박장관은 이와 함께 “15년전에 술을 끊었던 터라 남측 주최 만찬때 김위원장이 준 술을 조금만 마시고 뒀더니 김위원장이 ‘그렇게 술을 마시는 것은 나중에 합의해 놓고 약속 안 지키려고 그러는 것 아니냐’고 해 김위원장이 주는 술을 원샷으로 계속 마시다 취했다”고 소개했다.
박장관은 “하지만 동석해 있던 김용순 아태평화위원장이 김위원장에게 ‘(선언문이) 마음에 안 드시면 (서명을) 내일로 미루시죠’라고 얘기하는 것을 듣고 술이 확 깼다”고 회고했다.
고태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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