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정상회담 이후 우리사회는 미리 걱정했던 것처럼 통일이 당장이라도 이뤄질 듯한 과열기대 때문에 혼란스럽다. 섣부른 통일열기로 우리사회를 들뜨게 하는 원인은 주로 정상회담 수행자들의 무절제한 입이다. 동족상잔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과, 그에 이어 총부리를 겨눈 반세기의 분단대치가 그토록 간단하게 청산- 해소될 수 있는 일일까.박재규통일부장관이 4일 “이산가족들이 생사확인을 거쳐 상봉하고, 왕래한 뒤 자유의사에 따라 원하는 지역에 정착하는 방안을 남북 정상간에 논의했다”고 밝힌 내용은 듣기에 따라서는 마치 통일이 목전에 다다른 것처럼 착각을 일으키기 충분하다. 박장관이 전하고자 한 내용은 실제로 매우 고무적이다. 그러나 ‘생사확인을 거쳐 상봉하고, 왕래한 뒤 자유의사에 따라’라는 전제가 생략될 경우 공허한 얘기가 되고 만다. 우리사회는 자칫 말의 거두절미 전달로 문제가 되는 경우가 없지 않았다.
박장관도 부연했지만 생사확인을 거쳐 상봉과 왕래가 이뤄져 자유로운 주거선택이 가능하려면 10년이 걸릴지, 20년 이상이 소요될지 아무도 예측못한다. 남북이 그런 단계에 도달했다면 그것은 적어도 통일의 전단계 쯤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우리가 비전향 장기수들을 북쪽으로 돌려보내려는 것도 자유로운 주거선택의 단계를 앞당기려는 의지가 담긴 것이라고 믿고 싶다.
그러나 언제나 녹록하지만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지금 당장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 한가지라도 실현가능한 신뢰조치다. 공직자들은 앞장 서서 분위기를 과열시킬 것이 아니라 국민들로 하여금 차분하게 통일을 대비하고 준비하는 자세를 지니도록 계도하는 일이 급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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