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임이스트 유홍영(40)씨는 “조금 외롭다”고 했다. 결혼을 심각히 고민해 볼 새도 없이, 어느새 세월을 후딱 넘겨 버린 때문만은 아니다. 갖가지 매체들에 밀려 갈수록 입지가 좁아져가는 연극, 그 중에서도 소수의 몸짓 마임 아닌가.말마따나 ‘조금’, 그는 외로울지 모른다. 그러나 그에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천진한 웃음, 동지들과의 단단한 유대감이 있다. 교육 극단 사다리 대표, 한국마임협회 제 3대 회장. 또 매년 5월 춘천에서 열리는 국제마임페스티발의 집행위원.
그와 유진규 임도완 등 이 시대의 대표적 마임이스트 5명이 출범시킨 춘천 국제마임페스티벌이 올해로 12회. 호반의 도시 춘천이 국제문화도시로 급부상되는 데 중요한 지렛대로 한몫하고 있는 소리 없는 무대다.
그는 중학 2년때 연극에 입문, 서울예전(79학번)에서 수업하고 있었다. 그러나 입에 달라 붙지 않는 번역투 대사는 탈(脫)언어에의 갈망을 증폭시킬 뿐이었다. 혼자서 조용히 기계체조, 한국무용, 탈춤 등에 하루 여섯 시간씩 들인 것은 그 때문이었다.
극단 목화 현대예술극장 등지에서 가졌던 7년 연극 세월은 결국 1988년 극단 사다리 창단으로 귀결됐다. 성인극 출연을 위한 시험대로 폄하되기 일쑤인 아동극에다 마임의 재미를 불어 넣자는 의도였다.
정극과 오페라를 두루 섭렵한 그는 92년 공간사랑에서 첫 개인 발표회 ‘가면·몸·마임’으로 큰 날개짓을 했다. 살풀이 무당춤 등에서 어법을 빌고, 오브제 가면 천 등의 재료를 함께 구사, 90년 선보였던 ‘가면마임’이 그 출발점이었다. 당시의 다양한 경험은 극단 사다리에 이입돼 있다.
4월에 홈페이지(www.sadari.org)를 연 교육극단 사다리 단원은 모두 53명. 연극놀이 연구팀 8명, 마임을 정교히 연구하는 움직임연구소에 16명, 나머지는 모두 공연팀이다.
그들은 1998년 가평 두밀리 자연학교(교장 채규철)와 제휴, 한달에 한번씩 1박 2일로 ‘연극놀이교실’을 벌이고 있다. 지금은 5동의 대형 텐트지만, 언젠가는 ‘사다리마을’을 조성하겠다는 꿈은 늘 푸르다.
그러나 그에겐 가물에 콩나듯 보이는 마임 관련 기사말고는, 어설픈 평조차 찾을 수 없는 국내 평론계가 다시, ‘조금은’ 이상하다는 눈치다. 3년째 펼쳐오고 있는 소아 병동 순회공연때면 어김없이 허리춤에 매달리는 소아암 환자들의 고사리손에 아직도 콧날이 시큰하다는 그. 현재 국내의 정규 마임이스트는 모두 16명.
조영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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