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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렬칼럼/ 남북보도 민감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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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렬칼럼/ 남북보도 민감하지만‥

입력
2000.07.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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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冷戰)이 한창이던 무렵 이런 조크가 있었다.-기자들이 북의 김일성 수상(당시)을 방문했다. 책상 위에 전화 여러 대가 놓인 것을 보고 기자들이 물었다. “어디 쓰는 전화입니까” “이 것은 모스크바 직통, 이 것은 베이징 직통…” 설명을 듣고 난 기자들이 다시 물었다.“서울 직통은 없습니까”“서울? 그 쪽은 확성기를 쓰지”

그 확성기가 지난 달 남북정상회담 뒤 조용해졌다. 북쪽 신문 방송의 대남비방도 싹 사라졌다. 정상회담 뒤 끝에 김정일 위원장이 밝힌 대남비방 중지방침이 즉각 시행된 것이다. 이제 위에 적은 조크는 의미를 잃었고, 머잖아 김 위원장 책상에 서울 직통전화가 놓일 날이 올지도 모른다.

이와 같은 정상회담의 성과는, 다른 한편 북의 일사불란한 체제를 나타낸다고 할 수가 있다. 지도자가 결심을 하면 확성기는 물론 신문 방송도 조용해질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 체제에 익숙하다 보면 남쪽 언론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른다.

실제로 김 위원장은 정상회담 과정에서 비방중지 문제를 제기하면서, 비방 범주에 언론보도도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상회담을 수행했던 어떤 인사는 김 위원장이 남한 언론의 대북보도에 대하여 “혐오에 가까운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더라고 증언하고 있다. 특정 방송사나 신문사에 대한 취재 거부 움직임에 그만한 뿌리가 있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의 남북대화 기록을 보면 비방 중지는 빠짐 없는 안건이었고 그럴때마다 언론보도가 문제로 됐음을 알 수가 있다. 그 중의 두드러진 예가 92년 남북 기본합의서 제1장(남북회해)의 부속 합의서다. 전문 28조인 이 부속합의서는 8개조를 ‘비방 중지’에 할애하고 그 첫머리에 이런 규정을 두고 있다.

“남과 북은 언론 삐라 및 그 밖의 다른 수단과 방법을 통하여 상대방을 비방 중상하지 아니 한다”(제8조)

여기서 눈에 띄는 것은 언론과 삐라 등을 나란히 열거한 점이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이 제기했던 시각과 일치한다.

그러나 남쪽에서 보자면 우리 정부로서는 대북 삐라 살포 등을 중지 할 수는 있으나 언론 보도를 통제할 수 없다는 데 문제가 있다. 이번 정상회담 실무 합의서의 ‘언론조항’은 “쌍방의 보도는 정확성과 공정성을 기하기로 한다”는 것으로 정리하고 있지만, 우리 정부가 언론을 통제할 수 없다는 사정은 부속합의서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만큼 앞으로의 남북관계에서 언론보도 문제가 언제라도 마찰요인으로 등장할 가능성은 배제할 수가 없다. 그 것이 대개의 경우 우리쪽 부담이 되리란 사실을 염두에 두고 자세를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그 중의 으뜸은 남북관계 보도의 전문성을 높이는 일이다. 앞으로의 남북관계 취재 수요를 생각하여 전문인력을 대폭 확충하는 일도 급하다. 그리하여 남북관계 보도의 기준을, 북의 눈치가 아니라, 보도·논평의 보편적인 원칙과 남북관계의 전문적인 식견에 바탕하여 독자적으로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점은 남북대화의 직접 당사자인 정부로서도 인식을 같이 했으면 한다. 언론사에 대한 협력 요청만을 능사로 삼을 것이 아니라 언론이 관계된 대북협상에 좀 더 세심해야 하고, 우리쪽 언론 사정을 북쪽에 설명하고 납득시키는 노력을 더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정부의 남북관계 과홍보(過弘報)가 언론의 과보도(過報道)를 낳을 수 있음도 유념할 일이다.

어쨌거나 잊지 말 것은, 언론의 자유스런 보도와 논평은 우리 헌법의 ‘통일조항’(제4조)이 제시한 통일원칙인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한 핵심이란 점이다. 남북관계의 보도가 민감하고 조심스럽더라도 의연하게 대처하는 것이 우리 체제의 핵심가치를 지키는 정도(正道)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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