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불’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비록 약간 주춤하고 있지만, ‘추락’이라고 하기엔 섣부른 감도 없지 않다.한국영화로는 사상 최대 수확을 거둔 지난해 시장점유율 38.4%와 자꾸 비교하지 마라. 올해 상반기 25.1%면 2년 전과 비교해 적지 않다. 더구나 국제영화제에서 ‘춘향뎐’‘박하사탕’‘오!수정’이 얻은 유례없는 관심과 호평이 있었다.
그런데도 올해 한국영화는 ‘위기’라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이같은 전망은 하반기 역시 특별한 징후들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먼저 규모는 ‘대박’들이 수두룩한데 흥행에 ‘대박’이 나오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올해 최고 흥행작이라고 해야 81만명(서울)을 동원한 ‘반칙왕’. 그 뒤를 겨우 ‘거짓말’ ‘박하사탕’(이상 31만명)과 ‘동감’(30만명, 상영중)이 잇고 있다.
지난해 30만명 이상을 기록한 영화가 무려 11편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급격한 하락이다. 하반기 시작을 알리는 ‘비천무’가 개봉(1일) 첫 주말 14만명을 기록하며, 블록버스터로서의 위력을 과시했지만 그것으로 침체한 한국영화 흥행의 바람을 일으켜 몰아갈지는 미지수.
단순한 주기적 현상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영화는 보통 2년을 주기로 한상승과 하락을 반복한다. 제작기간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열세를 면치 못했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올해 강세인 것도 같은 맥락. 일본영화의 진출로 인한 새로운 구조개편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지난해 0.7%에서 올해 14.2%까지 올라온 일본영화. 결국 한국영화 자리를 빼앗아 가고 있는 셈이다. 그들은 “이제 ‘15세 관람가’까지 개방했으니 앞으로 그 몫은 더욱 커질 것이고, 한국영화의 감소는 자연스런 현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외부적 요인은 핑계에 불과하다. 지금 ‘한국영화 추락’에는 분명 이유가 있다. ‘쉬리’가 남긴 부작용이다. 벤처열풍과 투자자본으로 제작비 걱정도 없어졌고 새로운 인력도 많이 확보됐다.
그러나 문제는 규모 집착증. ‘클수록 된다’는 생각이 오히려 다양성과 합리성을 떨어뜨리고 있다. ‘비천무’를 비롯해 ‘단적비연수’ ‘무사’ ‘리베라메’ ‘사이렌’ ‘광시곡’에서 보듯 웬만하면 20억~40억원이다. 이런 영화의 특징은 철저히 볼거리와 테크놀로지 우선. 크게 보면 액션물 일색이다.
영화평론가 유지나(동국대 교수)씨의 분석.“들떠 있다. 그러다 보니 ‘동감’정도를 제외하고는 아이디어나 시나리오를 꼼꼼히 따지기 보다는 테크놀로지로 무마하려는 경향이 많다. 전반적으로 기획력이 떨어지고, 그러다 보니 영화에 재미나 개성이 없어졌다.”
시네마서비스 강우석 대표가 ‘헝그리 정신’이라고 말한 도전과 실험정신도 없어졌다. 대신 ‘우리관객들은 이런 것을 좋아한다.
지난해 공포물이 됐으니 더 거창하게 만들면 성공할 것이다. 그러자면 누구 누구를 캐스팅해야 한다’는 식이다. 지난해 ‘쉬리’ ‘텔미 썸 딩’의 성공을 잘못 해석한 결과이다. 영화의 단점을 요란한 마케팅으로 대체하지만, 그것으로 기대치가 높아진 관객들을 속일 수는 없다.
제작사들의 몸집불리기로 제작의 집중력이 사라진 것도 한 이유. 실제 우노필름이나 시네마서비스의 경우 사업다각화를 시도하면서 참신한 아이디어나 소재, 작품의 완성도가 덜하다는 평가이다.
자본이 커지고, 시장이 커졌고, 배급이 커지면서 영화 규모가 커지는 것은 필연적인 추세이다. 그러나 그것을 끌고 갈 전체적인 에너지가 제작사에게도 배우에게도 없어지고 있다는 것이 한국영화의 고민이다.
이대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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