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탑이 무너진 건 사람들이 서로 다른 말을 하게 돼 의사소통이 안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류의 언어 통일은 바벨탑을 완성시킬 것인가.주명건(朱明建·53) 세종대학 이사장은 세계 모든 인류가 쉽게 익히고 사용할 수 있는 ‘세계어’를 만들어 새로이 바벨탑을 쌓자고 나선 사람이다.
그의 바벨탑은 신에 도전키 위한 것이 아니라 언어의 민주화를 통해 인류의 복리증진을 꾀하자는 것이다. 1995년 그의 주도로 세종대학은 세계어연구소를 설립, 5년간 세계어의 단어와 문법체계를 마련해왔으며 지난달 30일에는 인터넷 웹페이지(www.unish.org)를 통해 그 동안의 연구결과를 공개했다.
그는 자신이 씨를 뿌린 세계어에 ‘유니쉬(UNISH)’라는 이름을 붙였다. ‘유니버설 랭귀지’라는 뜻이다. 그를 만난 곳은 세종(世宗)대학 집현(集賢)관 2층 그의 사무실이다.
_세계어란 무엇인가, 왜 만들고 있나.
“WTO 등 세계 경제체제 출범과 인터넷의 등장은 국가간의 인위적 장벽을 없애고 있다. 어느 민족 어느 국가도 다른 민족 다른 국가와 소통하지 않으면 존립할 수 없게 됐다. 이런 현실에서 한 가지 언어만 알면 세계 누구나와도 소통이 가능한 언어가 있을 필요가 있다. 그런 언어가 세계어다.”
_영어가 그런 기능을 하고 있지 않나. ‘영어공용어’론도 그런 점에서 어느 정도 설득력을 인정받고 있는 것 아닌가.
“영어가 지금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영어처럼 특정 민족사회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특정 ‘민족어’를 세계어로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특정 민족어가 세계어가 된다면 날 때부터 그 언어를 사용할 수 있게 되는 사람과 이를 새로 배워야 하는 사람 사이에 차별이 생기게 된다.
영어권 인구는 세계 60억중 3억5,000만명에 지나지 않는다. 극단적인 생각일지 몰라도 영어가 세계어가 된다면 이 3억5,000만명은 태어나면서 1등 시민이 되고 나머지 인류는 2등, 3등 시민으로 구분될 것이다. 따라서 민족어(자연어)보다는 인공적으로 새롭게 만들어진 언어체계, 즉 ‘인공어’가 세계어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언어의 민주화이다.”
“영어가 세계어처럼 인정되면서 영어를 배우는 데 너무나 많은 경비와 시간이 소요되는 것도 문제다. 우리나라의 경우 초등학교, 심지어는 유아때 시작한 영어교육이 청장년기까지 계속되지 않나. 매년 수조원이 영어교육비로 들어가지만 과연 몇 사람이 영어를 능숙하게 말하고 있나.”
_인공어가 세계어가 되어도 그런 경비와 노력은 필요할 것 아닌가.
“새로운 것을 배우는 만큼 노력과 경비가 안든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특정 민족어를 배우는 것 보다는 훨씬 적게 든다. 영어를 예로 들자. 동사의 불규칙 변화, 발음의 불규칙성, 단어의 이중성, 성의 변화, 복잡한 시제 때문에 배우기 어렵다. 외국인이 우리 말을 배울 때도 마찬가지다.
경어라는 개념조차 없는 사람들이 우리 말의 경어체계를 완전히 익히려면 엄청난 노력을 들여야 한다. 인공어란 민족어들이 갖고 있는 이런 불규칙성과 이중성 등을 제거하는 것이어서 배우기가 훨씬 쉬울 수 밖에 없다.”
_듣고보니 세종대학 연구진이 만들고 있는 세계어_유니쉬가 어떤 모습을 갖출 것인지 짐작이 간다. 유니쉬가 어떤 과정을 거쳐 어느 정도 단계에 이르렀는지 설명해 달라.
“내가 세계어 개발을 발제, 1995년 학교에 세계어연구소를 설립하고 유니쉬 단어 선정과 문법체계를 준비해왔다. 그동안 5번 국제 심포지엄을 열었으며 유니쉬 문법이 어느 정도 갖춰져 이번에 인터넷에 올리게 되었다. 이제부터 보급이 시작된 것이다. 연구소 연구진은 미국과 영국 등에서 학위를 받은 언어학 교수 8명과 컴퓨터전문가 등 9명이다.”
_유니쉬 단어는 어떻게 선정했나.
“우리나라와 미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 일본 인도 등 인구 7,000만명 안팎인 13개 국가 자연어 13개와 그리스어 라틴어, 실패한 세계어인 에스페란토 등 모두 16개 언어에서 가장 핵심적인 단어 2,300여개를 골라 알파벳으로 표기했다. 단어선정 작업은 앞으로도 계속, 매년 2~3만개를 추가할 계획이다.”
_유니쉬 문법은 어떻게 되어있나.
“최소화와 규칙화가 유니쉬의 기본원칙이다. 어순은 영어처럼 주어 동사 목적어 순서로 되어있다. 정관사와 부정관사를 없앴다. 글자에 따른 발음도 단일화했다. 시제는 과거 현재 미래 3가지로만 구분했으며 불규칙동사는 인정하지 않고 모든 동사는 ‘ed’만 붙이면 과거형이 되도록 했다
. 조동사도 쓰지 않으며 명사 형용사의 성변화도 없앴다. 유니쉬문법에 이런 원칙을 정한 건 민족어의 문법규칙이 합리적 기준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관습에 의해 생겨난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정관사 부정관사 조동사 성변화가 없어도, 소통이 되고, 시제를 단순화해도 사건이 발생한 때를 전달할 수 있는 민족어도 많다. 물론 우리말이 특징인 경어도 유니쉬에서는 찾을 수 없다.”
_에스페란토도 당신이 말한 언어의 민주화, 이를 통한 세계 시민의 복지증진을 위해 만들어졌지만 실패했다. 세계어의 보급은 그만큼 어려운 것 아닌가.
“에스페란토 이전에 1,000여종의 세계어가 만들어졌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에스페란토가 이중 가장 체계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실패했다.
에스페란토가 폴란드어와 독일어 라틴어를 기본으로 하고 영어와 스페인어와 프랑스어는 반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시아권 언어는 아예 제쳐 놓았다. 절대 세계어가 될 수 없는 태생적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_유니쉬도 보급이 문제일 것 같다. 아무리 잘 만든 세계어라해도 사용자들이 외면하면 사멸될 것 아닌가.
_“에스페란토는 보급매체가 없어서 실패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인터넷이 유니쉬의 보급을 촉진할 것이다. 사실 유니쉬는 인터넷이 등장했기 때문에 나왔다.
인터넷은 이미 기존 언어체계를 변형시키고 있지 않은가. ‘반가워’가 인터넷에서는 ‘방가’로 표현되는 것 처럼. 네티즌들은 더 쉬운 언어를 원하고 있다. 영어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느 나라 사람이건 외국인과의 인터넷 대화는 앞으로도 증가할 것이다.
영어보다 훨씬 배우기 쉬운 유니쉬로 대화할 때의 이점이 알려지면 유니쉬보급은 빨라진다. 네티즌의 반응과 참여는 자연히 유니쉬를 발전시길 것이다. 모든 민족어가 세대를 거듭하면서 발전해온 것 처럼 유니쉬도 그렇게 발전할 것으로 본다. ”
_유니쉬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말인가.
“언어는 끝없이 발전한다. 발전의 속도가 있을 뿐일 것이다. 나는 유니쉬라는 세계어의 씨를 뿌린 것에 지나지 않는다.”
_외국인에게 인터넷에 유니쉬사이트가 있다는 건 또 어떻게 알릴 것인가.
“우선 한국 일본 중국의 네티즌들에게 꾸준히 홍보할 생각이다. 인구 15억인 이 지역 네티즌들이 유니쉬로 소통하게 된다면 영어권이나 스페인어권에서도 유니쉬의 힘을 무시못할 것이다. 리눅스프로그램이 오늘날의 위상을 차지하게 된 것도 그런 과정을 거쳤다.”
● 유니쉬 단어
유니쉬 단어는 7가지 원칙에 따라 16개 언어에서 선정됐다. 공통성, 단순성, 구분성, 발음의 간결성, 문화적 연관성, 결합성, 다양성등이다. 유니쉬 단어를 일부 소개한다.
차는 영어로 ‘tea’지만 14개 언어가 차를 ‘cha’로 표기함에 따라 유니쉬에서도 ‘cha’로 쓴다. 뇌의 표기는 ‘brain’ ‘cerbo’ ‘gehirin’ ‘nao’ 등 16개 언어마다 거의 다르다.
이에따라 가장 짧은 ‘nao’를 유니쉬로 선정했다.‘공기’ 혹은 ‘대기’를 뜻하는 단어도 ‘atmosphere’ ‘aer’ ‘degi’ ‘taiki’ ‘suasana’등 13개중에서 가장 발음이 쉽고 간결한 ‘degi’를 쓰기로 했다.
● 유니쉬 문법
관사가 없으며 문장은 주어 동사 목적어 순서로 구성된다. 이에따라 의문문의 의문사도 문장뒤에 붙는다. 시제는 과거 현재 미래 3가지며 과거시제는 불규칙 변화없이 모든 동사 원형 뒤에 ‘ed’를 붙이며 미래시제도 조동사 없이 동사 원형에 어미 ‘il’을 붙이면 된다. 어미 ‘il’은 조동사 ‘will’의 단축이다.
유니쉬 예문(괄호 속은 영어와 한글 문장)
▲과거형=Tom wached beisbol game.(Tom watched a baseball game. 탐은 야구경기를 보았다.)
▲의문문=Sarah mited wu?(Who did Sarah meet? 사라가 누구를 만났니?)
▲미래형=Les mitil Susan.(They will meet Susan. 그 사람들이 수잔을 만날 걸.)
● 주명건은 누구
바벨탑은 몽상이다. 주명건도 스스로를 몽상가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몽상이 인류발전의 원동력이 아니었나. 한 시대의 몽상은 다음 시대의 현실로 나타나지 않았나”고 되물었다.
그는 이미 몇 해 전에 우리 사회에 몽상을 가지고 나타난 적이 있다. 전국의 큰 하천을 운하로 연결하면 우리 경제의 큰 문제인 물류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이 운하건설론은 4~5년 전에 여러 언론에도 ‘특이성’때문에 크게 소개되었지만 역시 한 몽상가의 몽상 정도로 치부되었다. “하지만 최근들어 나의 운하 이론을 공무원들이 다시 서랍에서 꺼내 자신의 이론인 양 정책화하고 있는 걸 자주 본다. 몽상이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한 세대도 걸리지 않는다는 걸 느끼고 있다."
그는 세종대학 설립자인 주영하와 최옥자의 장남이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대학과 시라큐스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박사학위(1978년)를 받았다. 세종대 교수와 부총장을 거쳐 1996년부터 이사장을 맡고 있다.
-가정적 배경도 없었고, 세종대 이사장이 아닌 평범한 시민이었다 해도 몽상을 할 수 있었을까. 대부분의 재벌 2세들도 몽상을 잘 하는것 같아서 묻는다.
"지금 내 지위는 내 몽상을 전달하기 쉽다는 이점밖에 없다. 일반인이었다고 해도 나는 몽상을 했을 것이다,"
최흥수기자 soongch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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