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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분단시대의 암울과 문학

입력
2000.07.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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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소설 ‘나누어진 하늘’과 ‘두 가지 견해’를 펼쳐 본다. ‘지하철’이라는 독일뮤지컬도 떠올려 본다.마침내 우리는 잘못된 역사의 광정(匡正)을 바라보는 전환기를 맞았다. 뜨거운 감성과 서늘한 지성이 교차하는 전환기에 독일 분단문학이 우리에게 희망과 교훈을 줄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헛되지만은 않을 것이다.

크리스타 볼프의 ‘나누어진 하늘’은 연애소설적인 요소가 많다. 동독에서 사랑을 맺은 남녀가 서독으로 탈출했다가 여자 혼자 결단을 내리고 동독으로 귀환하는 줄거리다.

우베 욘존의 ‘두 가지 견해’는 분단문제에 무심한 서독 청년 B와 동베를린을 떠나 서베를린으로 오게 되는 아가씨 D에 관한 이야기다. 청년 B는 서독(BRD)을, 아가씨 D는 동독(DDR)을 각각 상징하는 것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이 익명성 소설도 두 젊은이의 사랑과 분단이 주는 갈등을 묘사하고 있다.

두 소설은 분단체제 아래서 젊은이들이 겪어야 하는 부적응과 불화, 좌절을 묘사함으로써 분단의 극복 없이는 고통이 근본적으로 치유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그 점에서 이 작품들은 분단문학의 소임을 다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김민기가 ‘지하철 1호선’으로 번안한 폴커 루드비히의 ‘지하철’역시 동베를린 처녀가 서베를린의 애인을 찾아가며 만나는 풍경들을 그린 뮤지컬이다.

독일이 통일을 이룬지 10년만에 우리도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면서 우리 문학을 돌아보게 된다. 애석하게도 우리 문학에서 이런 시각으로 쓰여진 분단소설은 찾기 힘들다.

우리 소설은 이제껏 분단문학이기 이전에 처절한 전쟁문학이거나 이념문학이었고, 혹은 전쟁과 분단으로 인한 상처를 내면화하는 한(恨)의 문학이었다.

독일과는 달리 치열한 전쟁을 겪은 우리 토양에서는 거대한 역사 앞에서 무력할 뿐인 남북한 보통 사람의 꿈과 좌절이 묻어나는 분단문학의 뿌리 내리기가 어려웠다.

우리 문학은 아직도 6·25전쟁과 이데올로기를 객관화하는 단계를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남북체제를 함께 비판한 최인훈의 ‘광장’과 이념적 시비에 휘말린 조정래의 ‘태백산맥’등에서처럼 작가가 객관적 태도를 지키기도 힘겨웠다.

북한인의 삶을 단편적으로 다룬 산문은 있었어도 그들의 일상적 삶을 공정한 입장에서 조명·비교하고 형상화한 소설은 찾기 어렵다.

암울한 시대에도 시간은 흐르고 상황도 변한다. 명절 때마다 눈물 짓는 월남 실향민 외에 귀순자도 부쩍 늘어 그들 중 몇 사람은 ‘랭면집’을 차려 성공했고, 반대로 고집센 미전향 장기수들의 북행 길이 열리고 있다.

문학이 분단현실에 울고웃는 양쪽 사람들에 대해 따뜻하게 이야기를 걸기 시작할 때, 통일은 한낱 저들만의 관념적이고 공소한 이야기가 아니라 동시대인의 절박한 실감으로 다가오게 될 것이다.

문학은 어느 장르보다 공정하고 구체적으로 분단이 가져온 고통과 목마름을 우리에게 말해 줄 수 있다.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남북 첩보기관 간의 치열한 대결상을 그린 영화 ‘쉬리’에 대한 불만을 표시했다고 한다.

“남북 평화와 협력을 위해 그런 영화는 만들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는 것인데, 이제는 더욱 그런 말에 스며 있는 그쪽 사람들의 정서도 헤아려야 한다. ‘쉬리’의 국내외적 흥행성공에도 불구하고 그 영화가 안고 있는 남북 불신조장의 위험성 역시 지적된 바 있다.

이제는 남과 북에 모두 절망하고 바다에 투신자살한 ‘광장’의 주인공 이명준을 부활시킬 때다. 그 젊은이가 소통과 왕래가 가능해진 두 개의 땅에서 다시 한 번 고뇌하고 비판하는 진정한 분단소설이 씌여지기를 고대한다. 북한 문학에도 같은 기대와 주문을 하고 싶다.

박래부 (심의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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