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대란에 이어 이번에는 금융대란이 오나.’사상 초유의 ‘은행 총파업’ 불씨가 서서히 타오르고 있다. 금융노련이 ‘총파업 찬반투표(3일) 총파업 돌입(11일)’ 일정을 강행하겠다고 벼르면서 정부와의 대립이 극한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총파업이 강행될 경우 은행측은 차장급 이상 간부와 비노조원을 총동원, 업무에 차질이 없도록 한다는 방침이지만 노조원의 비중이 80% 이상인 만큼 ‘업무 마비’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총파업선언 배경
총파업의 도화선은 금융지주회사법. 금융노련은 5일 열릴 임시국회에 법률안이 상정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여론몰이를 통한 입법저지를 위해 ‘D-데이’를 11일로 잡았다.
총파업 일보 직전까지 내몰렸던 1998년 9월 금융기관 1차 구조조정 당시와 마찬가지로 강제합병에 따른 대규모 감원을 우려한 특단의 대책을 내놓은 것.
노조측은 금융지주회사법 제정 반대, 은행 강제합병 방침 철회, 관치금융 철폐 특별법 제정 등 6개 사항을 내걸며 대통령의 약속이 나오지 않는 한 대화조차 하지 않겠다는 강경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금융노련 하익준(河翼駿)정책부장은 “정부가 금융지주회사법을 졸속 제정하려는 것은 은행간 합병을 통한 시너지효과 창출보다는 공적자금 회수에 의도를 두고 있기 때문”이라며 “정부가 공적자금을 회수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지분을 해외 매각하거나 재벌에 넘길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채권펀드 10조원 조성, 종금사에 대한 은행권의 유동성 지원 등 최근 일련의 ‘관치금융’에 대해서도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더이상 부실책임을 은행에 떠넘기지 말고 정부가 책임지겠다는 약속과 함께 관치금융을 철폐할 수 있는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파국으로 치달을까
정부와 금융노련측의 극한 대립 상황으로 볼 때 현재까지 협상의 여지는 없어 보인다. 금융노련측 요구사항에 대해 정부는 “지나치게 이기적인 발상”이라며 도저히 수용할 수 없음을 밝히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최근 이용근(李容根)금융감독위원장이 부실은행 강제합병을 전제로 금융지주회사법을 만들려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했는데도 노조측이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금융노련측도 “사실상 대화의 조건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총파업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총파업에 들어갈 경우 의료대란 못지않은 금융대란이 불가피할 전망. 여신업무만 일부 가능할 뿐 송금, 입출금, 대출, 자금결제 등 대(對)고객업무는 사실상 마비상태에 빠질 것으로 금융계는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금융계에서는 대체로 ‘설마 총파업까지 가겠느냐’는 분위기다. 당국이나 은행, 노조 3자 모두가 파국을 원하지 않고 있는 만큼 11일 파업 돌입에 앞서 대화를 통해 사태가 해결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여론의 지지를 등에 업기 힘들다는 점도 금융노련을 부담스럽게 하는 요인이다. 시중은행의 한 임원은 “대다수 국민이 금융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하고 있는 만큼 노조측 주장이 설득력을 갖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또 외국계 은행으로 탈바꿈한 제일은행을 비롯, 합병과 무관한 일부 은행 노조가 총파업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고 있어 금융노련의 행보에 짐이 되고 있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