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10월. 동티모르 전투부대 파견 문제가 우리 조야를 뜨겁게 달궜다.‘국제평화노력에의 주도적 참여’ ‘대통령의 독단과 장병의 희생우려’ 등 여야가 치열하게 찬반논리를 전개하는 동안 일반국민은 혼란스러웠다. 정작 국제적 파병의 배경이 된 동티모르 주민의 참상과 인권침해에 대해선 아무런 언급도, 따라서 사전지식도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동티모르 파병국가중 ‘기형적인 사례’에 속한다. 각국 인권단체에선 수십년간 인도네시아군의 학살과 고문행위가 현안이 돼왔다. 이를 부끄럽게 여긴 한 국내단체가 동티모르주민돕기 성금을 모았으나 걷힌 액수는 단 200만원.
인권문제의 국제화는 지금 세계적 화두다. 황사에 의한 환경오염을 어느 한나라가 막아낼 수 없듯, 인권침해도 그나라 국민의 저항만으론 근절하지 못한다. 지난해 11월 미국 시애틀에서 세계 각국 인권단체들의 연대 시위가 WTO 각료회의를 무력화 시킨 것은 국제연대운동의 힘과 중요성을 반증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인권운동의 연대 노력은 걸음마 수준도 아니다. 국제 앰네스티 런던 본부에는 300명이 넘는 상근자들이 있지만 한국인은 한명도 없다. 유엔 인권위원회에도 한국인은 아직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국내에 난립한 인권단체들도 나라 밖의 인권에는 사실상 무관심하다. 지난해 2월 칠레의 독재자 피노체트가 영국에서 체포된 뒤 반인륜적 범죄에 대한 처벌 요구가 세계 모든 언론의 국제면을 장식했는 데도, 국내에선 단 한차례의 성명도 없었다.
성공회대 NGO학과장 조효제(趙孝濟·사회정책학) 교수는 “더이상 인권문제가 국가단위로 머물러 있지 않다”며 “국제연대를 통한 인권 활동은 국내 인권 향상에도 도움이 된다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인권실천시민연대 오창익(吳昌翼·34) 사무국장은 “광주항쟁 당시 주변국의 역할이 20년이 지난 지금도 논란이 되고 있다”면서 “우리의 인권이 유린됐을 때 외국의 방조를 따지면서 우리가 다른 나라의 참상을 외면하는 것은 자기모순”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5월 ‘5·18 20주년 국제학술회의’ 참석을 위해 광주를 찾았던 동티모르의 노벨평화상 수상자 카를로스 벨로 주교는 “사랑과 정의, 인권은 어떤 이념이나 구호보다 작고 구체적인 실천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정녹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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