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놀고 있다. 웅크리고 앉은 한 아이를 여러 아이가 빙 둘러싸고 서 있다.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그러면 ‘여우’는 “세수하안다, 밥 먹느은다, 잠 자안다”…라는 대답을 골라서 해야 한다. 여우의 대답은 개그 콘서트의 억양과 꽤 닮았다. 여우놀음의 절정은 아이들이 “죽었니 살었니?”하고 외쳐 묻는 대목이다. 여우가 “살았다!”고 하면 아이들은 잡히지 않기 위해 도망쳐야 하지만, 죽었다고 하면 놀리기를 계속할 수 있다.요즘은 이런 놀이를 하는 아이들이 없지만, 어느 시대 어느 사회건 아이들의 놀이는 시대상을 반영하거나 예징(豫徵)한다. 놀이와 요언(謠言)에는 세상의 비밀이 담겨 있다. 그런 생각으로 우리 사회를 살펴 보면 각 부문이 정부라는 ‘여우술래’를 둘러싸고 “죽었니 살었니?”하고 묻는 그림이 떠오른다. 정부는 꼼짝없는 술래이고, 사회의 다기다양한 이익집단은 정부의 존재 여부와 생사를 자꾸 묻고 있다. 정상회담이 끝난 지 보름만에 성과를 낸 적십자회담에서 알 수 있듯 남북관계는 잘 풀려가는 것같은데, 남한의 내부사회는 통합과 전진은커녕 갈등과 분열이 심각하다. 행정의 위엄과 신뢰는 땅에 떨어졌고 정부의 기능과 역할에 대한 회의도 커져가고 있다.
이 시대의 정부는 과거처럼 개발과 산업화를 선도하려 하기보다 다양한 갈등과 이해관계를 합리적 민주적으로 조정·수용함으로써 국민 전체의 발전과 행복을 지향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다. 정책의 통합과 갈등 해소에 기여해야 할 국무총리는 국회의 신임은 받았지만 국민의 신임은 얻지 못하는 상황이다. 종합소득세를 내지 않았고 위장전입까지 한 경력이 있는 국무총리의 등장은 국민을 실망케 하고 있다.
정부는 소신을 갖고 개혁을 추진하기보다 이익단체와 적당히 타협해왔다. 의사협회는 지금까지의 어느 파업보다 더 강력하고 질적으로 심각한 폐업행동을 통해 의약분업을 사실상 연기시켰다. 금융기관노조들은 공적 자금 투입은행의 통합에 제동을 걸며 총파업을 예고하고 있다. 민영화 작업중인 공기업의 노조들도 고용불안 해소를 요구하며 파업하고 있다. 그런데 당국자는 “금융지주회사제도를 통한 공적자금 투입은행들의 통합방침에 변화가 없다”면서도 “은행이나 노조가 반발하면 강제로 추진하지 않겠다”고 말해 뭐가 뭔지 알 수 없게 만들고 있다.
부처이기주의로 인한 다툼도 오래된 일이지만 요즘은 교육자치를 일반자치에 통합하려는 기획예산처 행자부와 교육부 시·도교육위원들의 갈등이 커지고 있다. 그럴 경우 시·도교위와 교육감이 없어져 시·도지사가 임명하는 교육담당 부지사나 부시장이 교육을 맡게 된다. 시·도지사가 교장 교감까지 임명하면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 훼손되고 지방정치인들의 교육간섭이 예상되는데도 통합에 대한 사전 논의는 없었다. 반대자들은 정부예산의 20%가 넘는 교육예산부담을 지방으로 넘기려는 의도라고 주장하는데, 돈과 교육의 질 중 무엇에 중점을 두어야 하는지 확립된 정책도 없이 평지풍파만 일으킨 셈이다.
더욱 나쁜 것은 할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국민고충처리위원회가 1994년부터 지난 해까지 각 부처와 지자체, 정부투자기관에 대해 시정권고한 부당한 행정처분이나 불합리한 제도 2,156건 가운데 거부하거나 조치를 늦춘 사례가 36%인 766건이나 된다는 통계는 국민을 실망시키기에 충분하다.
최근 열린 공공부문 혁신대회에서는 공직자들의 개혁의식 확립, 정부혁신추진위 출범, 소프트웨어 중심의 개혁, 전자정부의 조기 실현, 각종 규제 철폐등이 추진방향으로 제시됐다. 구호는 무성하고 깃발은 화려하다. 결국 실천이 문제인데 이런 상태에서 행정혁신추진위가 7월중 발족된다고 달라질까. 정부는 국민으로부터 존경까지는 몰라도 신뢰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당국자들은 스스로 물어 볼 일이다. “죽었니 살었니?”
/편집국 국차장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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