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자투리 필름으로 자투리 인생을 그린 영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그러나 이 영화는 이제 배에 기름이 너무 많이 낀 한국 영화에 신선한 자극, 혹은 자객(刺客)이 될 만한 충격적인 영화이다.
감독만으로도 충분히 화제거리이다. 미국 영화에 새로운 흐름을 만든 쿠엔틴 타란티노가 비디오가게 점원이었듯, 감독 류승완(27)은 부모를 일찍 여읜 소년 가장으로 독학으로 영화를 공부했다.
대학을 나온 것도 아니다. 공사장에서 잡역부로 일하며 틈틈히 사설 영화 워크숍에 참가했다. 1998년 부산단편영화제에서 자신이 주인공으로 나온 ‘패싸움’으로 우수작품상을, 지난해 12월 한국독립 단편영화제에서 ‘현대인’으로 최우수 작품상을 받으며 ‘류승완’이라는 이름 석자를 뚜렷이 각인시켰다.
장선우 감독의 ‘나쁜 영화’에 쓰고 남은 자투리 필름에 400만원을 들여 만든 그의 작품. 그러나 내용은 ‘나쁜 영화’를 위협할 만큼 무시무시하다.
영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는 이미 단편으로 나온 ‘패싸움’(1부) ‘현대인’(3부)에 ‘악몽’(2부),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4부)를 새로 만들어 덧붙였다. 스태프들이 시간 나는 대로 작품에 합류하는 독특한 방식.
영화의 미덕은 모든 분노와 폭력, 좌절이 철저히 ‘날 것’이라는 것이다. ‘나쁜 영화’에서 보여지는 감독의 지식인적인 위악, ‘인정 사정 볼 것 없다’에서 보여지는 세련된 폭력, ‘킬리만자로’에서 보여지는 깔끔한 핏빛. 이런 건 아예 기대하지 말자. 철저히 날 것이다.
아이들은 일종의 접두어나 접미사처럼 ‘X팔’, ‘X같이’를 수십종의 버전으로 내뱉고, 세상에 대한 시선은 신랄하며, 폭력은 직접화법이다. 세련된 회칼이 아닌 식칼로 여러번 난자 당하는 것이 바로 조무라기 깡패들의 운명이다.
‘패싸움’은 ‘공돌이’라고 시비 거는 예술고교생과 싸움을 벌이게 된 석환(류승완)과 성빈(박성빈), 성빈은 맥주병으로 현수의 머리를 쳐 죽게한다.
‘악몽’에선 7년의 수감생활을 마치고 나온 성빈을 사로 잡는 현수의 망령, 그리고 살아있는 망령들인 건달과 형사들의 괴롭힘을 그린다. 3부 ‘현대인’은 경찰이 된 석환과 성빈의 중간 보스인 태훈(배중식)의 지리하고도 처절한 혈투, 4부는 석환의 동생인 고교생 상환(류승범)이 성빈의 수하에 들어와 조직의 희생양(칼받이)이 되어 죽는 이야기이다.
성빈이 이소룡에 취했듯, 상환은 주윤발에 취했고, 두 사람은 똑같이 목숨을 잃는다. 아주 더럽게.
액션 영화 스타일의 1부, 호러 분위기인 2부, 다큐기법을 차용한 3부, 하드고어(피가 많이 튀는)와 냉소가 뒤섞인 4부, 영화의 각 챕터마다 독특하면서도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경찰이나 깡패나, 억울한 살인자나, 그런 친구를 배반한 자 모두 이 무시무시한 폭력 논리의 구성물일 뿐이다.
16㎜카메라로 찍었으나 화면은 협소하지 않으며, 기존의 어떤 폭력에 관한 영화보다 치열하다. 제작비는 후반 작업을 합쳐 1억2,500만원. 정말 돈이 영화를 만드는 건 아니다. 7월 15일 개봉. 오락성 ★★★☆ 작품성 ★★★★☆
박은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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