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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해공포 문산 "그저 하늘에 빌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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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해공포 문산 "그저 하늘에 빌뿐..."

입력
2000.06.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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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례 물난리에 가위눌린 임진강수계 주민 표정“그저 큰 비 안오기만 바랄 뿐입니다. 여기서 사는게 무섭지만 수해 몇번에 살림이 다 거덜나는 바람에 돈이 없어서 못 떠납니다.”

1996년과 98년, 지난해까지 연이어 세차례 수마(水魔)에 할퀴었던 경기 파주시 문산읍 임진강 수계 주민들이 홍수에 가위눌린채 또다시 장마철을 맞았다. 지난해 수해피해조차 아직도 복구되지 않은데다, 당국 나름대로 심혈을 기울여왔다는 수방대책도 워낙 여러번 ‘속아온’주민들 입장에서는 도통 미덥지 않기 때문이다.

경기도 관계자는 “최선을 다해 폭우에 대비하고 있지만 안전을 장담할 수는 없다”면서 “최근에 보수한 제방에는 문제가 없겠지만 기존 제방은 어디가 터질지 예측불가능”이라고 솔직이 털어놓았다.

◇ 아직도 끝나지 않은 복구·수방공사

문산읍 앞으로 흐르는 동문천에는 제방건설사업이 한창이다. 지난해 이곳 제방이 터져 물이 범람하는 바람에 문산읍이 물바다로 변했다. 시공당국인 서울지방국토관리청 관계자는 이미 장마전선이 상륙해 있는 지금도 “장마가 오기 전까지 완공할 수 있다. 하천 폭과 제방 높이를 크게 확대한만큼 지난해같은 불상사는 없을 것”이라는 ‘한가한’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더구나 이 제방은 수백㎙에 걸친 구간이 가제방으로 설계돼 있다. 제방을 높이고 하천을 넓히려면 불가피하게 토지를 잠식해야 하는 데 보상가 시비 등이 아직 타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임진강으로 유입되는 물의 흐름을 원활하게 틔우기위한 문산천의 하상 준설공사도 아직 진행중이고, 문산천 배후에서 진행되는 ‘내봉지구 배수개선 사업’은 기초공사도 마치지 못한 상태여서 올 여름 가동은 이미 틀린 상태다.

동문천을 가로질러 문산읍으로 진입하는 문산교 개수공사도 여전히 기초공사 단계에 있다. 교각이 낮아 물흐름을 방해하는 바람에 지난해 수해를 가중시켰다는 지적에 따라 교각을 높이는 작업(숭고작업)을 하고 있지만, 연말이나 돼야 끝나리라는 전망이다.

◇ 치유되지 않은 수해 상처

문산읍 주민들 중에는 부도로 쫓기는 사람들이 유난히 많다. 얼떨결에 당한 96년 수해 후 많은 이들이 돈을 대출받아 재기를 시도했지만 재작년, 작년의 연이은 물난리로 이마저도 절딴났다. 돈이 전혀 돌지않아 사채시장은 완전 마비된지 오래고, 모 은행은 지난해 아예 이 곳 지점을 폐쇄해 버렸다.

돈이 없어 이사갈 엄두를 못내는 대신 집들 마다 요즘 ‘피난준비’에 한창이다. 아파트 고층에 전세를 내어 가재도구와 귀중품 등을 옮겨 놓는가 하면, 그나마 능력도 안되는 주민들은 최소한의 가재도구만을 남기고 나머지는 비닐로 포장해 지붕 근처 다락에 올리고 있다.

특히 슈퍼마켓이나 의류 상점들은 재고를 없애느라 물품 주문을 평소의 절반이하로 줄여 상당수 상점이 마치 폐업직전의 을씨년스런 풍경이다. 슈퍼를 운영하는 김진옥(46·여)씨는 “지난해 수해때 가게에 있던 물품이 모두 물에 잠겨 거의 전재산을 잃었다”며 “당국의 수방공사를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 여름이 지난 후에나 물건을 다시 들여놓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여름 중부지방을 휩쓴 ‘게릴라성 집중호우’로 인해 파주시, 연천군, 포천군, 의정부시 등 임진강 수계에서 주민 13명이 사망하고 이재민 2만6,031명이 발생했으며, 이로 인한 재산피해는 총 2,560억원으로 집계됐다.

배연해기자

seapower@hk.co.kr

■'人災 규명委' 이인곤회장 인터뷰

"주민의견 반영안된 수방공사 미봉책"

“지난해 문산 수해는 천재(天災)가 아니라 인재(人災)입니다. 동문천이 범람한 것은 폭우나 서해만조 탓이 아니라, 문산교 교각공사중 박아놓은 철재 프레임을 제때 철거하지 않아 물의 흐름을 막았기 때문입니다.”

‘인재를 규명하는 투쟁위원회’ 회장 이인곤(39·여)씨는 이달 말까지 지난해 수재피해 주민들의 서명을 다 받는대로 정부와 당시 문산교 시공사인 D건설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낼 계획이다.

문산읍에서 감자탕 식당 ‘순악질’을 운영하고 있는 이씨는 “지난해 수해로 3만여명의 문산읍 주민들이 생활터전을 모두 잃은 상태”라며 “임진강 상류 홍수조절용 댐 건설, 임진강 본류 하상 준설 등 근본적인 수방대책이 아니고서는 재해 재발을 막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씨는 당국의 수방대책을 전혀 믿지 않는다. “이곳 주민들은 이제 어느 지역 어느 맨홀 뚜껑을 열어야 배수가 잘 되는지까지 훤히 알 정도입니다. 그런데 수방공사에 이런 주민들의 의견이 한마디도 반영된 적이 없습니다.”

그는 달래기로 일관하는 당국의 무책임에도 분통을 터뜨렸다. “어처구니 없는 얘기를 해드릴까요? 형편없는 수방대책을 항의하니 모 정부관계자가 ‘다른 지역의 제방을 무너뜨려서라도 문산만은 피해가 없도록 하겠다’고 대답하는 겁니다. 이걸 다른 지역 주민들이 알면 뭐라고 하겠습니까?”

송기희기자

gihu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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