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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강아지 치료비보다 싼 사람 치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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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강아지 치료비보다 싼 사람 치료비

입력
2000.06.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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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대란(大亂)도 많다. 쓰레기대란, 교통대란, 급기야는 의료대란까지 일어났다. 다른 대란들은 조금 불편한 정도로 끝나지만 의료대란은 문제가 다르다. 사람의 목숨이 왔다갔다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언론은 연일 대서특필하고 의사들의 집단이기주의를 비판했다.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왜 일어났을까. 모든 대란이 그렇듯 이번 일도 당국의 잘못된 정책으로 인해 일어났다. 한마디로 말해 지나치게 낮게 책정돼있는 의보 수가(酬價)가 의료대란의 근본 원인이다. 강아지 치료보다 싸게 먹히는 인간의 치료비용이라는 어이없는 의보 수가체계가 이번 대란의 뿌리인 것이다. 예를 들어 모두가 즐겨먹는 자장면을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된다.

제대로 자장면을 만드는데 드는 비용이 100이라고 하자. 그런데 정부가 그 어떤 이유에서든 자장면 값을 50이라 정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그 대답은 간단하다. 아무도 자장면을 만들지 않거나 만들어도 각종 편법이 난무하게 된다. 가장 쉬운 편법은 자장면의 양을 줄이고 질을 낮추는 것이다. 보다 세련된 편법은 끼워팔기다. 자장면을 먹으려면 다른 음식을 함께 먹게 하는 것이다. 흙파서 자장면 만드는 것도 아닌데 누가 이같은 편법을 비난할 수 있을까. 적정한 재료비와 노력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 반영되지 않은 가격정책은 실패하기 마련이다.

의료행위도 마찬가지다. 의사들의 진료 및 치료에 대한 대가가 낮게 책정되면 각종 편법이 이뤄질 것임은 자명하다. 먼저 의보대상이 아닌 의료활동이 횡행하게 된다. 고가의 MRI 진료가 남발되고 성형외과가 의사들의 인기업종으로 떠오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값싼 진료비를 벌충하기 위한 갖가지 노력이 이뤄진다. 이중 대표적인 것이 약물의 과대처방이다. 즉 의사들은 그간 약을 팔아서 진료비를 대신 받아온 것이다. 그 결과 우리 국민은 의사나 약사라면 먹지 않을 약품을 끊임없이 먹어와야 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가 의약분업을 강행하겠다니 의사들이 집단폐업으로 나설 수 밖에 없다.

잘못된 가격체계는 잘못된 인간행동을 유발한다. 개인은 주어진 가격체계속에서 자신에게 가장 이로운 행동을 할 뿐이다. 개 치료비가 사람 치료비보다 높은 상황에서 의사와 일반국민들은 나름대로 해법을 찾는 것이다. 의사들은 불필요한 진료와 과대한 약처방으로 잘못된 의보수가에 대응해왔다. 이와 마찬가지로 국민들도 주어진 의보수가체계에 걸맞게 행동해 왔다. 값싼 진료비에 맛들여 조금만 아파도 병원에 가고 심지어는 이 병원 저 병원 기웃거리기까지 한다. 이 결과 병원에서 사람의 줄은 자연히 길어진다. 한참을 기다리고 의사는 잠시 밖에 볼 수 없다. 양질의 의료혜택은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이 와중에 관료들은 물가안정, 복지후생 증진과 같은 애매한 단어들을 내세우며 복지부동으로 일관해왔다. 의사협회, 약사협회 그리고 시민단체들의 눈치만 살펴온 것이다. 그러다가 의약분업이라는 한건주의를 위해 충분한 사전준비도 없이 밀어부쳤다. 의료대란이 일어날 수밖에.

이제는 소득 1,000달러 시대에 만들어진 의료보험체계를 1만달러 시대에 걸맞게 개편할 때이다. 의보수가체계를 현실에 맞게 조정해야 함은 물론이다. 뿐만 아니라 사적보험과 공적보험에 대한 개념정립도 이뤄져야 한다. 이 과정에서 의사와 국민 모두가 건강하게 그리고 효율적으로 살아갈수 있는 유인체계는 필수적이다. 그래야만 병원에서 사람 줄도 짧아지고 합당한 진료와 치료가 이뤄질 것이다.

잘못된 교육정책으로 조기 해외유학붐이 불었는데 잘못된 보건정책으로 해외치료붐이 일어날까 염려된다. 이참에 잘못된 의료보험체계를 전면 재검토해야한다. 그리고 잘못된 점이 있다면 지체없이 바꿔야 한다.

/오성환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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