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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도 '미남'을 좋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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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도 '미남'을 좋아해

입력
2000.06.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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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를 본 지 오래 됐다. 어릴 때 시골집 처마 밑에 늘 둥지를 틀었던 그들이기에 해마다 찾아오던 친척이 발을 끊은 것처럼 서운하다.우리가 뭘 그리 섭섭하게 했기에 이렇게 매정하게 인연을 끊는단 말인가. 불과 십여 년 전만 해도 도심 한복판의 전깃줄에도 자리가 비좁도록 앉아 있던 그들이었건만 이젠 시골 어느 마을 아무개 집에 제비가 둥지를 틀었다는 것이 신문에 날 지경이다.

“제비는 청명(淸明)에 왔다가 한로(寒露)에 간다”는 옛말처럼 대개 삼월 삼짇날 즉 양력으로 4월초면 벌써 우리 하늘을 가르기 시작하다 10월초가 되면 강남으로 떠날 채비를 차리곤 했던 철새다. 수컷들이 암컷들보다 며칠 먼저 도착하여 제가끔 자기 터를 마련하기 위해 열심히 노래를 한다. 말이 노래지 지지배배 하는 꼴이 요즘 유행하는 랩송과 흡사하다. 휘파람새의 멜로디에 비하면 단조롭기 그지없다.

머리 기름 발라 붙이고 옷 쪽 빼 입고 여자들 꽁무니만 따라 다니는 남자들을 우린 흔히 제비라고 부르나 실제 제비 수컷들은 무척 가정적인 아빠요 헌신적인 남편이다. 제비 꼬리처럼 뒷 단이 길게 빠진 연미복을 영어로는 ‘제비복’(swallow coat)이라 부르지만 제비의 긴 꼬리는 장가를 일찍 가기 위함이지 바람을 피기 위함이 아니다. 제비는 새들 중에서도 일부일처제를 지키는 모범적인 새다.

연미복의 뒷 단이 길면 길수록 제비 암컷들이 좋아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유럽 제비의 경우 번식지에 도착하여 그저 1주일 남짓이면 짝을 구한다. 그런데 실험적으로 꼬리를 짧게 만든 제비들은 거의 2주일이나 걸려 겨우 짝을 구했다.

반면 다른 수컷들로부터 잘라낸 꼬리를 강력접착제로 붙여 별나게 긴 꼬리를 갖게 된 수컷들은 불과 3일만에 암컷을 맞았다. 남보다 먼저 신방을 차린 제비 수컷은 한 여름에 두세 번이나 새끼들을 키워낼 수 있으니 꼬리의 위력이 참으로 대단하다.

제비 암컷들의 미적 감각에 관한 재미있는 연구가 또 하나 있다. 양쪽 꼬리의 길이가 고른 수컷을 암컷이 선호한다는 것이다. 실험적으로 한쪽 꼬리가 조금 잘린 수컷들은 암컷들의 눈길조차 끌기 어렵다.

제비를 비롯한 40여종의 동물이 한결같이 균형 있는 몸매를 아름답다고 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간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여성들은 대개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균형 잡힌 얼굴을 지닌 남성들에게 성적 매력을 느낀다고 한다. 한 때 전 세계 여성들의 마음을 고스란히 사로잡았던 제임스 딘이나 험프리 보가트의 눈썹이 늘 가지런했던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미남배우들은 완벽하게 균형 있는 얼굴을 지니고 있다.

우리 나라는 어쩌다 제비도 찾지 않는 나라가 되었을까. 새끼들이 한창 먹이 달라 보챌 때면 제비 부부는 매 2-3분에 한번 꼴로 벌레를 잡아들여야 한다. 하루에 줄잡아 500-600 번을 드나드는 셈이다.

전 세계에서 단위 면적 당 거의 제일 많은 양의 농약을 쏟아 붓는 이 땅에 그만큼 많은 곤충이 남아 있을 리 없고 그를 알아차린 제비들이 우릴 포기한 것이다. 행운의 박씨를 받을 자격도 없는 놀부의 나라가 염치도 없지 뭘 그리 바랄 수 있겠는가.

최재천 서울대 생명과학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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