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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칼럼] 우리는 당신을 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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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칼럼] 우리는 당신을 잊고 있었다

입력
2000.06.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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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감회속에서 우리는 한국전쟁 50돌을 맞이하고 있다. 분단 55년만에 남북정상회담이 열렸던 2000년 6월, 이제 한반도의 6월은 ‘전쟁의 달’이 아니라 ‘화해의 달’로 역사에 기록돼야 한다는 소망속에서 6·25 50주년 기념행사들은 평화를 기원하는 행사로 치뤄졌다.이런 분위기에서 한국전 참전용사들의 유해발굴은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육군은 4월부터 6·25의 격전지였던 다부동(낙동강전투의 교두보)과 안강(낙동강 방어선)지역, 한강방어선이었던 개화산지역에서 149구의 유해를 수습하여 국립현충원등에 안장했다. 나라를 위해 싸우다가 목숨을 잃은 용사들의 유해를 50년이나 외면했던 우리의 무관심은 미국정부의 노력과 너무나 비교가 된다. 미국정부는 한국전과 월남전에서 사망한 미국인 장병들의 유해를 찾기위해 가능한 모든 노력을 쏟고 있다. 1990년부터 98년까지 북한에서 237구의 미군유해를 넘겨받기위해 미국이 지불한 ‘유해발굴비’는 190만불에 이른다.

클린턴미국대통령은 25일 워싱턴의 참전용사 묘역에서 열린 한국전 50주년 기념식에서 6·25 참전용사들과 유가족들을 단상에 세우고 “한국전은 잊혀진 전쟁이 아니다. 우리는 당신들을 잊은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휴전협정이 조인된 7월27일을 ‘한국전 참전용사의 날’로 정하고 성조기를 반기로 게양해 희생된 영웅들의 명복을 빌자고 말했다. 우리의 ‘영웅들’은 잊혀져 있었다. 유해송환을 위한 협상조차 필요없는 제나라 땅에 묻힌채 50년이나 방치돼 있었다.

육군이 수습한 유해들중에서 2구는 신원이 밝혀졌다. 다부동지역에서 유해와 함께 발굴된 플라스틱 3각자에 새겨진 최승갑이란 이름을 전몰자 명단에서 찾아내는데는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최승갑은 평택태생의 하사였다. 그의 아내 임오순씨(76)는 외동딸과 함께 발굴현장으로 달려와 남편의 유골 몇조각을 손에 들고 울음을 터트렸다. “뼈라도 만나니 좋아요. 이제 좋은곳으로 가세요”라고 그는 말했다. 그는 삼각자와 함께 나온 남편의 호루라기와 만년필도 알아 보았다.

전북익산태생으로 22살에 전사한 이장학이등중사는 안강지역의 야산에 묻혀 있었다. “전투가 끝나고 산에 올라갔을때 이 자리에 작은 봉분이 있고 ‘이등중사 이장학의 묘’라고 쓴 팻말이 꽂혀있었다”고 증언한 마을주민 덕택에 그의 신원이 밝혀졌다. 전우들은 그를 묻고 떠나며 이장학이란 이름을 남겼으나, 그 이름을 추적해서 신원을 밝혀준 사람은 없었다. 한 마을주민의 기억속에 지금까지 이장학이란 이름이 남아있지 않았다면 50년만에 발굴된 그의 유해는 ‘무명인’으로 처리되었을 것이다.

그의 동생 이장석씨(68)는 “형이 전사했다는 통지는 받았지만 유골이 발견되지 않았기때문에 부모님은 혹시나 혹시나 하며 형을 기다렸다. 세상떠나실때까지 형이 죽었다는 사실을 믿지 않으셨다”고 목이 메었다. 10대에 헤어진 형의 유골앞에 큰절을 올리며 그는 “형님 용서해 주세요”라고 말했다. 어찌 그가 용서를 빌 일인가. 그는 국가를 대신해서 용서를 빌었다.

유해발굴 작업은 장마철을 넘기고 9월부터 재개될 것이라고 한다. 다부동·안강지역과 강원도의 양구·백석산·피의 능선·화천등 격전지 일대에 묻혀있는 많은 참전용사들이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너무 오랫동안 우리는 그들을 잊고 있었다. 무엇을 딛고 우리의 오늘이 존재하는가를 우리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클린턴대통령은 한국전 50년 기념사에서 “참전용사들의 용기와 희생이 오늘 많은 국가들이 누리는 평화와 자유의 근간이 되었다. 한국전 참전은 냉전에서 최종적인 승리를 거두는데 필수적인 요소였다”고 말했다. 6·25를, 6·25의 영웅들을 잊어서는 안된다. 나라를 위해, 평화를 위해 목숨을 바친이들을 잊고 있는 나라는 나라가 아니다.

발행인 장명수

msch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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