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첫 아이를 낳은 김경숙(28·서울 서초구 방배동)씨는 20만원이 넘는 유모차를 구입했다.부실한 유모차로 인한 안전사고를 여러번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차양, 장바구니 등을 갖춘 디럭스형 유모차를 사용해 본 것은 열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7㎏이 넘는 유모차는 무거워서 계단을 오르내릴 수가 없는 데다 건물 입구의 턱이나 울퉁불퉁한 도로 때문에 바퀴가 잘 굴러가지 않는다.
자가용이 없으면 유모차를 끌고 외출하는 것은 포기해야 한다. 독일에서 살다온 그는 “유모차를 끌고 버스를 타려
면 버스기사가 기다려 줄 뿐 아니라 다른 승객들이 함께 들어주던 독일과는 천양지차”라고 지적한다. 주부들이 자주 찾는 백화점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다. 최승혜(35·서울 관악구 봉천동)씨는 지난 세일기간 중 아이를 데리고 나갔다가 상당히 고생했다.
백화점에서 대여해주는 유모차는 10여대. 유모차를 빌리려고 2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또 유모차가 오르내릴 수 있는 워킹벨트가 없는데다 엘리베이터안이 꽉꽉 차 이동하기가 무척 힘들었다.
유모차 뿐만이 아니다. 어린 자녀와 외출하는 것은 보통 고역이 아니다. 골목을 나서면 인도와 차도가 구분이 없어진 길을 차들이 쌩쌩 달리기 때문에 아이들 단속하기 바쁘다.
버스 승강계단이 너무 높은데다 아이들 걸음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 아기 기저귀를 갈기도 힘들고 젖을 먹이기는 더욱 힘들다.
최근에는 놀이동산이나 대형서점 등에서 기저귀교체대를 설치하고 있지만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공중화장실은 물론 박물관 관공서 등 공공시설에서도 어린이를 위한 배려를 찾기 어렵다. 5살 아들을 둔 유은영(30·서울 강동구 천호동)씨는 “좌변기가 커 아이 엉덩이가 빠질 지경”이라고 말한다. 그는 또 “어린이에게 박물관 구경을 시키려해도 박물관 전시대가 너무 높아 아이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고 지적한다.
놀이터가 어린이에게 더 위험한 장소가 되기도 한다. 동네놀이터에는 따로 관리인이 없기 때문에 그네줄이 끊어지거나 발판이 떨어져도 그대로 방치해둔다. 유씨는 “동네 놀이터는 보통 그늘이 없다.
어린이들은 체표면적이 적어 쉽게 체온이 오르고 일사병에 걸리기 쉬워 여름에는 아예 놀이터에 나가노는 것을 금지한다”고 말한다. 특히 스텐으로 된 미끄럼틀은 여름철에 열을 받아 화상을 입을 정도다. 외국의 경우에는 보통 미끄럼틀이 안전한 목재로 되어 있다.
이처럼 아이키우기에 불편한 환경은 우리 사회가 성인중심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인권운동 사랑방’ 배경례간사는 “아이는 사회가 함께 키우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UN아동권리조약에 따르면 아동양육은 부모의 책임일 뿐 아니라 국가가 지원해야 할 책임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우리 나라는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제도적 행정적 시스템이 전무한 상태”라고 설명한다. 한편 경기도 평택시 ‘두껍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박현숙씨는 “엄마들도 공공시설물을 자기 물건처럼 아껴쓰고 자기 집 밖의 환경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고쳐나가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동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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