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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청문회가 해야 할 일

입력
2000.06.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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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일 이틀에 걸쳐 이한동 국무총리 서리에 대한 국회의 인사청문회가 열린다. 그동안 ‘한다, 안한다’, 또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된다’고 말도 탈도 많았던 인사청문회가 드디어 우리 앞에 그 실체를 드러내게 되었다. 임명직 고위공직자에 대한 국회 차원의 인사청문회는 헌정사상 초유의 경험이다. 생산적인 청문회로 자리잡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당초 여야는 인사청문회 대상과 범위를 싸고 첨예한 대립상을 보였다. 여당은 가급적 대상범위를 좁히려 했고, 야당은 넓히려 했다. 특히 야당은 국정원장 검찰총장 경찰청장 국세청장 등 이른바 ‘빅 4’에 대한 청문회를 주장했지만 여당은 지나친 범위확대는 대통령의 인사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반대해 결국 ‘속빈 강정’꼴이 되고 말았다.

인사청문회의 당위성은 ‘인사가 만사’라는 평범한 진실에서 비롯된다. 통치권자의 통치행위중 인사를 가장 으뜸가는 중요한 일로 파악한 것이다. 따라서 청문회는 인사권자가 인사를 적재적소에 적법하게 했는가를 따져보게 된다.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가 국정을 이끌어 나갈 인물에 대해 정책적 능력과 자질, 도덕성을 따져 보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이 제도를 실시하는 대표적 국가는 미국이다. 미국 대통령은 연방공무원을 임명할 때 원칙적으로 ‘상원의 조언과 동의를 얻도록’헌법에 명확히 규정돼 있다. 대상자는 장·차관, CIA국장, 대사 등 주요 외교관, 연방대법원 판사 등을 비롯 1만6,000명이 해당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관료적 절차에 불과하고 실질적으로는 약 600명이 인사청문회를 거친다고 한다.

미국의 경험으로 볼 때 이 제도는 순기능 요소가 많다. 대통령이 공직자를 임명하기 전 후보자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 이뤄진다. 후보자의 학력 경력 병역 납세 재산관계 등 전반에 걸친 물샐틈없는 실사가 그것이다. 문제가 생기면 청문회 도중이라도 스스로 물러난다. 청문회는 결정적 하자가 없는 한 대통령의 통치행위를 존중한다. 지난 200년동안 부결 건수가 겨우 12건에 불과한 사실이 이를 말해준다.

이런 상황에서 ‘1주일 시장, 1개월 장관’의 출현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임명직 공직자에 대한 철저한 사전 검증절차는 결과적으로 절대권력자의 인사횡포를 막는 유용한 수단이 되기도 한다. 청문회가 결격 사유를 사전에 걸러냄으로써 인사 남용의 폐해를 보완하는, 말하자면 검증 메카니즘이다.

문민정부시절, 1주일만에 물러난 서울시장을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인사청문회 제도가 확립돼 있었던들 이런 볼상 사나운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오늘부터 이틀간 열리는 청문회는 이 총리서리의 업무수행능력, 경력과 전문성, 재산형성 과정의 도덕성 여부, 공직에 대한 신념 등을 따지는데 초점이 모아져야 한다.

잠재적 대권후보에 대한 흠집내기 차원의 접근이나, 구태의연한 인신공격성 폭로 비방전이 돼서는 안된다. 그것은 새로운 제도의 정착을 방해할 뿐 아니라 청문회 무용론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한나라당이 폭로성 청문회를 지양하겠다고 다짐한 것은 그래서 신선하다. 지켜볼 일이다. 국회의원은 스스로가 독립된 헌법기관이다. 제왕적 보스의 ‘똘마니’이거나 ‘홍위병’이 아니다. 독립된 헌법기관답게 이 총리서리의 정책비전에 대해 소신껏 따져봐야 한다.

헌정사는 소중한 경험을 우리에게 전해 주고 있다. 소위 ‘저격수’,‘행동대’를 자처했던 의원들의 말로가 어떠했는가를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공직내정자나 증인은 죄인이 아니다. 정책비전이나 공직수행 능력을 검증받기 위해, 혹은 내정자의 도덕성을 입증하기 위해 부름에 응한 사람들이다. 필요없이 위압적으로 호통치던 과거의 잘못된 관행은 버려야 한다.

거듭 강조하지만 인사청문회가 일방적으로 내정자의 흠집을 찾거나, 옹호하는 자리여서는 안된다. 총리서리의 공직수행능력과 전문성, 정책적 비전을 따지는 데 여와 야의 입장이 어떻게 다를수가 있겠는가.

/노진환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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