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타는 냄새에 잠을 깬다. 혹시 독가스는 아닐까. 비몽사몽간 끔찍한 일이 일어난 것 같은 기분이 들고, 이런 상황에 대비해서 비상약을 갖추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50년전 6.25는 얼마나 끔찍한 날이었을까. 한강 다리가 폭파됐다는 소식을 들은 서울 시민들은 얼마나 놀랐을까. 그리고 그 이후에 들이닥친 상상불가능한 사건들 앞에 얼마나 망연자실했을까. 급격한 사건은 ‘대참사’건 ‘대화해’건 상관없이 ‘힘없는 시민들’에게는 불안하기만 한 것이다. 남북정상회담으로 축제 분위기인 지금 이런 불길한 느낌에 빠져드는 것은 아마도 우리 선배들이 근대사를 통해 겪은 그 통제불가능한 끔찍한 사건들이 우리 몸안에 집단 무의식으로 전해 내려오기 때문일 것이다.최근 신문에서 읽은 어느 경제학자의 남북통일에 대한 분석은 명료했다. 남북 긴장 상태가 완화되면 마이너스 요인보다는 플러스 요인이 훨씬 클 것이며인구 7,000만은 다국적 기업이 진출할만한 매력을 지닌 시장규모라는 것이다. 외환, 주가 변동, 대량자본도피 현상이 경제외적 요인에 의해 일어날 위험성이 줄어들고 교통 요충지로서 한반도가 가진 지리적 전략성을 한껏 활용할 수 있으며 인구 고령화로 어려움을 겪게 될 상황에서 북한의 노동력을 ‘기동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플러스 요인 등은 드디어 남북한이 동북아에서 상당한 위상을 가진 나라가 될 수 있게 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상생의 경제 협력’ ‘공존의 길 활짝 열렸다’는 듣기만 해도 가슴 설레는 말이 아닌가.
분명 평양에서 만난 ‘두 분’의 노력, 두 분의 혜안, 두 분의 연기는 훌륭했다. 한국내의 ‘개혁 피로증’이 하룻밤새에 가시고 북한 내의 기아문제도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지 않은가. 세계 열강의 힘의 논리에 의해 ‘헤어짐’을 강요당했던 한반도가 공존과 통합을 위한 주체적 걸음을 시작할 기회가 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민족을 하나로 모은다면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는 높으신 분의 말씀은 과장된 것이다. 못할 일이 엄청 많을 것이고 엄청 어려운 일들이 덮칠 것이다.
공동선언 장면을 보면서 감격의 눈물을 흘린 ‘국민’은 무엇을 상상하면서 울었을까? 혹시 “무찌르자 공산군”을 부르며 고무줄뛰기를 했던 ‘반공 국민’이 드디어 ‘승공 통일’이 이루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흘린 눈물은 아닐까? 당하기만 하면서 살아온 한풀이를 죽기 전에 누군가에게 할 수 있게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흘리는 기쁨의 눈물은 아니었을까? 통일이 되면 자신의 고통의 대가를 보상받고야 말리라고 주장하고 있는 분단시대의 희생자들은 통일의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하려 할까? 우리는 지금 통일 과정을 이끌어갈 주체가 누구일지 물어야 한다.
나는 그 해답을 모른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구시대의 안경을 쓰고 문제를 풀려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구세대의 안경이란 국민을 단일한 집단으로 보는 시각을 포함한다. 이미 국민은 무척 다양해졌고 통일은 바로 그 다양해진 국민/시민들의 소망을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 다양함을 담아내는 의견수렴절차가 생략된 회담과 선언을 국민들은 거부할 것이다.
구시대의 안경인 ‘개발’의 논리 역시 지양해야 할 논리이다. 새 시대를 열었던 권력자들은 예외없이 거대한 ‘공간 점유’계획을 세우곤 한다. 나는 거대한 화합을 이루어낸 두 권력자가 비무장지대라는 거대한 공터에 끔찍한 무엇인가를 지을 구상을 했을까봐 염려스럽다. 생태계를 파괴하는 식의 개발은 더 이상 안된다.
‘권력을 위한 권력’과 자본의 논리가 남북을 하루아침에 하나로 묶어낼 위험성을 경계하자. 숨가쁜 쫓김과 터트림의 사건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게 하자. 열린 소통 구조를 통해 속도를 조절하는 일은 삶을 생각할 수 있는 다양한 국민/시민들이 몫이다.
/조한혜정· 연세대교수·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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