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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숭호가 만난 사람] 외교관서 호스피스로 '안세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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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숭호가 만난 사람] 외교관서 호스피스로 '안세훈'

입력
2000.06.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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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관서 자원봉사자로 안세훈의사들의 진료거부 이틀째인 지난 21일 신촌세브란스병원 암센터에서 자원봉사(호스피스)를 하고 있는 안세훈(安世勳·66)씨를 만났다.

쿠웨이트대사, 시드니총영사 등을 지낸 고위 외교관 출신의 백발 노인이 그 힘들다는 암병동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는 사실도 이야기거리였지만 간암수술을 받고 제2의 삶을 살고 있는 그는 ‘생명의 소중함’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도 궁금해서였다.

신문에서도, 방송에서도 많은 이들이 나서 의사들의 파업에 대해 생명의 소중함을 알면 그래서는 안 된다고 질타했지만 매일 매일 마지막 날을 살고 있는 암환자들과 생활하는 자원봉사자들만큼 생명의 고귀함을 마음 깊이 느낄 수 있는 사람은 드물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병원에서 일하는 자원봉사자로는 안선생님이 최고령일 것 같습니다. 과거 경력도 가장 화려할 것 같고요. 언제부터 자원봉사 일을 해왔습니까. 또 어떤 연유로 자원봉사를 하게 됐는지요.

“올 1월부터 입니다. 최고령 자원봉사자라거나, 경력이 가장 화려한 자원봉사자라는 말이 맞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이제 6개월 밖에 안 됐으니 견습 자원봉사자라고 불러주는게 더 좋겠습니다.”

“자원봉사를 해야겠다고 마음 먹은 것은 몇 년전 이 병원에서 간암수술을 받고 목숨을 건진 후 부터입니다.

오래전부터 교회에는 나갔지만 그 때 새삼 ‘내가 다시 살게 된 건 하나님의 뜻이다. 이제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수술을 받은 것이 95년 6월이었는데 처음에는 나이도 나이인만큼 병원 안내나 청소라도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체력이 회복되고보니 그것보다는 나와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직접 돕는게 좋지 않느냐는 생각이 들어 지난해 말 호스피스교육을 받고는 바로 이 병원에서 일하고 있습니다.”(그는 병상에서 일어난 직후 자원봉사를 하려했으나 의사가 몇년간은 체력을 회복해야 한다며 만류하는 바람에 겨우 올해부터 일하게 됐다며 일찍 자원봉사자로 나서지 못한데 대해 아쉬워했다.)

-간암에 걸리면 거의 소생을 못하는 것으로 아는데 용케도 투병을 잘 하신 것 같습니다.

“초기에 발견한 탓에 이렇게 다시 살아서 일하고 있습니다.”

-자원봉사 일은 어떻게 합니까.

“일주일에 이틀씩 나옵니다. 한 번 나오면 8시간씩 환자들을 돌보는데 과천 집에서 나와 다시 돌아가는 시간까지 하면 11시간은 걸리지요.

처음엔 오전에 두 명, 오후에 두 명해서 하루 네 명의 환자들을 돌봤는데 호스피스 사무실에서 내가 관청경험이 있으니 사무실 행정을 맡으라고 해서 요새는 환자는 오전 오후에 한 명씩만 돌봅니다. 나이대접을 해주어서 고맙기는 한데….”

-지금까지 몇 명의 환자를 돌보셨습니까.

“남자환자 15명을 돌봤습니다. 13분은 이미 돌아가셨고 지금은 두 분을 돌보고 있는데 다행히 한 분은 건강이 아주 좋아져 저 뿐 아니고 다른 자원봉사자들도 기뻐하고 있습니다.”

-환자들을 돌본다는데 어떻게 돌보는지요.

“맛사지도 해주고, 대소변도 받아주고, 말동무도 해야지요. 그런 겁니다.”

-힘이 들겠습니다. 제 가족들도 잘 하려하지 않는 일을 하시는게.

“맞습니다. 우리가 돌보는 환자는 목숨이 길어야 2~3개월 남은 말기암환자들입니다. 말기암환자는 본인은 물론 가족까지 지쳐있지요.

그러다보니 가족과 환자들이 소원해진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가족에게 한을 갖고 떠나는 환자들도 있습니다. 그러니 자원봉사자가 필요하지요. 곧 세상을 떠날 사람들이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한을 품고 떠나서야 되겠습니까.”

-자원봉사자들이 환자의 한을 풀어준다는 이야기인데 어떻게 풀어주십니까.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지요. 암환자들은 보통 ‘나는 남에게 잘 못한 것이 없는데 내가 왜 이런 지독한 병에 걸렸나’며 주위와 세상에 저주와 원망을 퍼붓습니다.

그들의 이런 이야기를 그들의 입장에서 들어주다보면 어느새 한이 녹아 버렸다는 걸 알게 되더군요. 평안하게 죽음을 맞이 하더라고요.”

-가장 기억에 남는 환자가 있습니까.

“작년에 호스피스 교육을 받을 때 실습나가서 만난 77살 난 암환자가 있었습니다. 저에게는 첫 환자였는데 워낙 오래 앓아 자식들이 ‘아버지 간병하다 어머니까지 돌아가시겠다’는 생각에 전문간병인이 있는 요양기관에 의탁을 했어요.

이걸 안 그 환자는 ‘이제 내가 가족으로부터도 버림받았구나’라며 방에 불도 못 켜게 하고는 의사고, 간호원이고 누구도 안 만나는 거예요.

이러니 다른 환자들도 침울해져 그곳 분위기가 말이 아니었지요. 이 환자를 저보고 돌보라고 해서 병실에 들어가 ‘선생님, 저도 간암을 앓다가 살아났습니다’며 웃도리를 들치고 수술자국을 보여주었더니 말문을 여는 겁니다.

서로 상처자국을 만지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3시간30분이나 했습니다. 저는 ‘부인과 자식을 이해해라, 살고 죽는 게 다 하나님의 섭린데 그럴 것이 없지 않느냐’고 말하고는 병실을 나왔는데 나중에 그 부인이 전화로 ‘안 선생님때문에 가족이 평화를 찾았습니다’고 말하더라고요.

결국 그 환자는 돌아가셨지만 저는 그 때 첫 경험으로 ‘아, 호스피스는 이렇게 하는 것이구나’라고 느꼈지요.”

-견습자원봉사자라시더니 처음부터 시작을 잘 하셨군요.

“세상을 곧 떠날 사람들에게서는 여러가지 냄새가 나요. 약냄새는 물론이고 고름냄새, 양치질을 못한 탓에 입냄새도 심하지요. 다 죽음의 냄새인데 전에는 곧 잘 맡아지던 것이 요즘엔 느낄 수도 없습니다. 숙달이 된 것인지….

-의사들이 진료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환자를 돌려보낸다고도 하는데 환자가 줄지는 않았나요.

“암병동에 있는 환자들을 돌려보낼 수는 없지요. 다른 병동에는 환자가 많이 줄었다고 합디다만.

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처지에 이런 말을 하는 뭐하지만 인간의 존엄성을 안다면 진료거부라는 건 말이 안되지요. 장의장에서 시체를 처리하는 사람들이 유족들에게 10만원짜리로 할까요, 20만원짜리로 할까요

라며 공갈협박하는 것과 다름 없어요.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소중히 해야만 합니다. 오늘 아침에 무슨 모임에서 이 병원 최고 간부들과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들도 ‘이게 아닌데, 잘 돼야할텐데’라며 안타까워 하더군요.

사망선고를 받은 암환자들도 마지막 순간까지 자기 목숨에 집착하는데 멀쩡하게 살아날 수 있는 사람이 진료거부때문에 목숨을 잃는 일이라도 일어나면 어떻게 의사들이 앞으로 얼굴을 들고 다니겠어요. 한 사람의 영혼도 귀하게 생각해야 하는 거예요.”

-외교관은 언제 그만 두었습니까.

1992년에 시드니총영사가 마지막 직책이었습니다. 1957년 외무부에 들어갔으니 35년만에 그만두었지요. 하지만 시애틀총영사를 할 때인 1986년부터 그만 둬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때도 담낭제거수술을 받고 난 뒤였는데 병상에 누워있다보니 하나님이 나에게 원하는 건 이게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가족이 반대하는 바람에 조금 늦어지긴 했습니다만 정년을 3년 앞두고 떠났으니 늦은 것도 아니라는 생각도 들고. 외무부를 떠난 후에는 극동방송에서 부사장으로 3년 일했습니다.”

▥"내 마지막봉사는 시신기증"

인터뷰 말미에 그는 자신의 마지막 봉사는 ‘시신기증’이라고 말했다.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는 자원봉사를 하겠지만, 언젠가는 이나마 할 수 없을 때가 올 것이고 죽을 때는 시신을 병원에 기증해 의술발전에 도움이 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장기는 물론이고 뼈와 살까지 바치고 가겠습니다. 연세대학교 의무부총장을 지내신 김명선박사도 돌아가시면서 시신을 병원에 기증, 제자들이 울면서 해부학 강의를 했다고 들었답니다. 나보다 훌륭한 사람도 자신의 육신에 미련을 갖지 않는데 내가 뭐라고….”

“집사람과 아이 셋을 모아놓고 시신을 기증하겠다는 유서를 보여주었습니다. 다들 반대를 하더니 이제는 이해를 해요. 집사람은 요즘에는 이 문제를 가지고 기도를 합니다. 자신도 그렇게 하고 싶은데 과연 죽은 후라도 자신의 시신이 칼질당하는 걸 상상하면 무서운 모양이지요.”

▥안세훈씨가 말하는 '자원봉사제'

호스피스가 된지 여섯달 밖에 안됐다고 말했지만 그는 호스피스를 비롯 우리나라 자원봉사제도 발전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자원봉사제도에 대한 그의 생각을 일부 옮겨본다.

“요즘들어 우리나라에도 자원봉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늘어나지만 사명감보다는 일시적 유행때문인 것 같아요.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있는 주부들이 남이 한다니까 여럿이 어울려 교육은 받아보지만 막상 봉사 현장에는 나타나지 않고 있어요.

여기도 등록 호스피스는 700명이나 되지만 정작 환자를 돌보는 사람은 70여명에 지나지 않아요. 그러니 교육받은 사람중 겨우 10분의 1 정도만 현장에서 일하고 있다고 봐야합니다.”

“하지만 병원도 호스피스들을 받아들일 준비를 갖춰야 합니다. 호스피스는 암환자들을 돌보는 사람들인데 암환자를 이 병동 저 병동으로 분산시켜 놓으면 호스피스들도 이곳 저곳 찾아다니느라 힘이 들지요.

저는 호스피스운동을 확산하려면 정부에서도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외국의 스쿨버스 보셨지요? 노랑색 버스말입니다. 그 버스운전사들은 거의가 노인인데 왜 그런지 아세요? 은퇴한 교장선생님들입니다.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것이지요.

우리도 그런 분들을 활용할 생각을 해야 하는데 왜 안되는지,공직에서 물러난 분들은 왜 자원봉사로 말년을 보내려 하지 않는지….”

“자원봉사자는 경제적 보상 등 유형의 보상을 바라지 않습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했다는 뿌듯함, 보람 등 무형의 보상만을 받지요.

하지만 자원봉사자를 이용하는 곳은 그곳이 정부든 병원이든 개인이든 유형의 보상을 받게 됩니다. 인건비 절감분이라고 해도 좋고요. 이렇게 서로 좋은 일이 더 빨리 뿌리 내릴 수 있도록 언론이 대대적 캠페인을 벌이면 좋겠습니다.”

▥약력

연세대학 정외과 졸업 1957외무부 입부(특채) 1957시애틀총영사 1984-1987쿠웨이트대사 1987-1990시드니총영사 1990-1992극동방송부사장 1992-1995

편집국부국장 정숭호

soongch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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