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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벌경영에 무너진 '시그램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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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벌경영에 무너진 '시그램제국'

입력
2000.06.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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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업벗어난 3대후계자 브론프먼2세“할아버지가 살아서 이 소식을 들었다면 아마 가슴이 찢어졌을 것이다.”

시그램이 지난 20일 프랑스의 통신·미디어 그룹인 비벤디에 인수됐다는 발표가 나오자 시그램의 창업주이며 지난 1971년 사망한 새뮤얼 브론프먼의 전기작가 마이클 마루스가 논평한 말이다.

양주 시바스 리갈의 메이커로 전세계에 널리 알려진 시그램은 1세 창업주인 브론프먼이 1924년 양조장에서 출발한 기업이다.

아이작 스턴이 바이올린이 없으면 살 수 없듯이 술을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양조장 사업을 했다는 브론프먼은 자신이 키운 양조장 사업이 끝까지 가족의 손에서 경영되기를 희망했다. 때문에 자신을 도와주던 동생들을 쫓아내기까지 했다.

그는 지난 1960년대 가족회의를 열고 손자인 에드거 브론프먼 2세(44)를 손으로 가리키며 후계자로 지명했다.

당시 그는 “바로 너다. 너야말로 우리 집안의 사업을 앞으로 제대로 끌고 갈 수 있는 유일한 아이”라고 말했다.

그의 사후 시그램의 경영권은 아들인 에드거 브론프먼 1세를 거쳐 1994년 유언대로 손자인 에드거 브론프먼 2세로 넘어갔다.

에드거 브론프먼 2세는 이후 시그램을 전통적인 술 회사에서 대형 미디어 회사로 탈바꿈시키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보유하고 있는 듀퐁 지분을 팔아치우는 대신 음반업체 폴리그램을 갖고 있는 유니버설 그룹을 인수함으로써 세계 최대의 음반회사가 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는 배우, 가수 등 유명 엔터테이너에 둘러싸인 채 시그램을 제대로 경영하지 못했다. 그가 대권을 인수한 이후 지난 6년간 시그램 주가는 2배가 됐지만 같은 기간 동안 동종업계의 타임 워너 주가는 4배로 뛰었다.

더구나 숙부인 찰스 브론프먼 공동회장이 시그램 주식을 대량 매각하는 등 지원을 하지도 않았다. 주변의 환경도 시그램에 불리한 방향으로 급격히 변했다.

CBS와 비아콤의 결합, 타임 워너와 AOL의 합병 계획 발표 등은 시그램으로서는 견뎌내기 어려운 변화였다. 시그램은 미국내에 주요 TV방송이나 케이블 TV를 갖고 있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시그램의 음반사업 부문은 인터넷상의 무료 CD 복사 때문에 고전을 면치 못했다.

창업자인 새무엘 브론프먼은 양조장 사업이 가족사업으로 영원히 남도록 하려고 했으나 사업 후계자를 잘못 선택하는 실수를 한 셈이다. 캐나다 브론프먼가(家)가 3대에 걸쳐 일으키고 가꿔온‘시그램 제국’은 결국 ‘족벌경영’끝에 사라지게 된 것이다.

에드가 브론프먼 2세는 창업자인 할아버지의 유지를 지키지 못하는 손자가 됐다. 그는 이번 비벤디와의 합의를 통해 소유권을 전혀 보유하지 못한 채 ‘비벤디 유니버설’의 부회장으로만 남게 됐다.

로이터 통신은 시그램이 캐나다 족벌기업중 사라져 버린 32번째 기업이 됐다며 위스키 시바스 리갈, 코냑 마르텔, 럼 캡틴 모건 등 유명 양주를 제조해온 약 70억 달러 규모인 시그램의 양주 및 음료 회사가 어디로 넘어갈 지 주목된다고 보도했다.

이주훈기자

ju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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