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이대현 기자의 영화산책] 배창호감독 4년만의 신작 '정'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이대현 기자의 영화산책] 배창호감독 4년만의 신작 '정'

입력
2000.06.23 00:00
0 0

감각의 부재? 자기 지키기?그의 고집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어쩔 수 없는 감각의 부재인가. 아니면 자기 지키기인가.

1996년 ‘러브 스토리’부터 홀로서기를 시작한 지 4년만에 어렵게 완성시킨 ‘정’을 내놓으면서 배창호(47) 감독은 또 한번 이런 질문을 받아야 했다.

그만큼 지금 그의 ‘영화만들기’와 ‘만든 영화’는 한국영화에 만연된 투자자본, 젊은 영화인들에 의한 기획상품과 거리가 멀다는 얘기이다.

배창호 감독은 “내가 하고 싶은 영화, 이야기를 위해”라고 분명히 못박았다. 무작정 투자사 자본이 싫어서가 아니다.

‘러브 스토리’때 제작비 마련에 너무 고생해 타협하고 싶었다. 그러나 주문식 생산에 견딜 수 없었다.

시적(詩的)인 영화도 상품성이 있는데 “줄거리를 얘기해 보라”고 하면서 몇개의 장르, 스타 출연, 이벤트성 만으로 투자를 결정하려는 비전문가들에게 실망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영화를 문화장르로 생각하는 제작자가 있었다. 그러니까 ‘꿈’이나 ‘안녕하세요 하나님’을 찍을 수 있었다.”

그러니 지금 영화는 철저한 오락. 내 목소리를 내려면 힘이 들더라도 내가 돈을 마련해 찍는 수 밖에 없었다. 여기저기서 돈을 꾸어 ‘정’을 만들었다.

그가 말하는 ‘내 목소리’란 무엇인가. 회의에서 만들어지고, 아이디어를 짜깁기하고, 쾌락성만 추구하는 요즘 영화는 아니다. 감동과 정이 넘쳐나고, 우리의 자연과 생활문화가 스며있는 작품. 다분히 ‘정’을 의식한 말이다.

그렇다면 1980년대 상업성과 대중성을 얻었던 ‘고래사냥’(1984년) ‘황진이’(1986년) ‘기쁜 우리 젊은날’(1987년)은 뭔가. “사회심리, 비판이란 색깔에도 불구하고 인위성, 조작성, 자극성이 강하다. 이젠 걸러내고 싶다.

담백하고 순수하고 감정이 깊은 영화를 찾고 싶다”는 것이다. 그것이 지금 환영을 받지 못하더라도 바꾸지 않을 생각이다.

아내 김유미씨를 여주인공으로 출연시킨 것을 두고 그는 “적역이었다. 나는 돈키호테가 아니다”란 두 마디로 잘랐다.

이제 그의 영화는 2000년대 ‘우리 기쁜 젊은 날’은 아니다. 그의 정서는 다분히 1970년대 낭만에서 멈춰있고, 그나마 ‘정’은 더 뒷걸음질을 쳤다.

낡고, 감각이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러나 어쩌랴. 단 일주일 상영에 겨우 몇천명의 관객. 한(恨)을 녹여낸 살가운 정(情)의 깊은 맛을 아는 40대는 극장을 찾지않고, 20대들은 이제 ‘TV 문학관’같은 향기에는 관심조차 없느니. 배창호의 고민과 외로움은 점점 더 깊어질지 모른다. 이제 그는 어디로 갈꺼나.

이대현기자

leedh@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