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프 드라프트 코리아 박경숙사장고졸 애니메이션 검사관(색칠하기 전 밑그림을 최종점검하는 역할)에서 연 매출 190억원의 제작사 사장이 된 박경숙(40) 라프 드라프트 코리아(Rough Draft Korea)사장. 그는 사장실보다 제작실에 있는 시간이 더 많다.
지금도 만화원판을 살피고 문제가 생기면 직접 전문가를 챙긴다. 직원들 역시 사장실을 드나드는 게 어렵지 않다. 20분짜리 만화영화에 들어가는 그림 2만장에 모두 박사장의 손때가 묻었다.
라프 드라프트 코리아는 ‘심슨’이나 TV용 ‘라이온 킹’등 우리에게도 낯익은 애니메이션을 만든 곳이다. 비록 원작은 미국 것이지만 올해 약 150편, 1,700만달러어치를 수출할 계획이다.
또 국내 애니메이션 하청제작사 가운데 유일하게 원청(원작을 제외한 기획전반을 대행하는 것)계약을 따냈다. 미 20세기폭스사의 ‘퓨처라마’를 3년째 만들고 있는 것이다.
하청작품은 편당 1억5,000만원(20분기준)을 받는 데 비해 원청은 8억5,000만원을 받는다.
“선의 굵기나 미묘한 색깔차이 등 고객사를 만족시키는 요인은 아주 섬세해요. 품질로 인정받으려면 이러한 요구가 끝 부서까지 정확히 전달돼야 하죠. 만화제작은 기계로 찍어내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전 제작진의 호흡이 중요합니다.”
커미션 한 번 없이 작품의 품질로 승부해 온 박사장에겐 그 ‘오기’가 사회생활의 원동력이었다. 고교졸업 후 취직한 무역회사에서 그는 영어실력을 자랑해 볼 기회도 없이 대졸자와 큰 격차에 실망해 사표를 던졌다.
다음 직장인 만화영화사에서 외국인 기술자에게 곁눈질로 검사관 기술을 익혔고 오래잖아 직접 하청업체를 차리고 나왔다.
미국인과 결혼(남편 역시 애니메이션 감독이다), 도미한 후에도 검사관, 한국 애니메이션기업의 LA지사장 등으로 일했다.
그러다가 1992년 한국에 돌아와 라프 드라프트 코리아를 설립한 것. 설립 초기 손잡은 신인 감독이 지금은 주목받는 감독으로 성장해 든든한 거래처가 된 것이 박사장은 가장 뿌듯하다.
박사장은 “사장쯤 됐으니 경영대학원을 다녀 학위를 갖추라”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그러나 그는 간판에 신경쓸 여유가 없다. “주문이 밀려들어 걱정이고 어떻게 하면 우리 만화를 만들까 고민하느라 바쁘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신입사원을 뽑을 때도 졸업장은 검토대상이 아니다. 컴퓨터그래픽, 미술 전공자가 많기는 하지만 입사선별기준은 졸업장이 아닌 포트폴리오(작품집)뿐이다. 임금 역시 성과급제다.
“간혹 실력으로가 아니라 여자라는 이유도 수주를 따냈다는 엉뚱한 이야기가 들려올 땐 많이 억울했어요. 하지만 내가 즐거워서 일을 하다보면 곧 잊혀지죠. 최고가 되기 위해선 먼저 일을 즐길 줄 알아야 합니다.”
김희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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