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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맥경화' 정부가 뚫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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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맥경화' 정부가 뚫어라

입력
2000.06.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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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경색을 타개할 묘방은 무엇인가.지난 주말 이후 정부는 돈의 ‘혈로(血路)’를 뚫기 위한 대책들을 잇따라 내놓고 있지만 시장의 반응은 여전히 차갑다. 전문가들은 “신용경색을 초기에 차단하지 못할 경우 금융기관과 기업이 모두 멍드는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는 점을 강조하며 몇가지 처방을 제시하고 있다.

■처방1: 정부의 시장신뢰 회복(근원적 대책) 신용경색의 근본원인은 정부의 말을 시장이 믿지 못한다는 데 있다. 6월말까지 은행부실을 다 드러내겠다고 하는데도 은행에 대한 시장불신은 여전하고 강제합병은 없다고 하는데도 은행들은 여전히 몸을 사린다. 투신펀드가 모두 ‘클린화’됐다고 해도 투신사에서는 돈이 계속 빠져나가고 있다.

서강대 김광두(金廣斗)교수는 “지금까지는 얼굴에 흉터가 나면 화장을 덧칠 하는 식으로 문제를 처리해왔다”며 “보다 일관성있고 솔직한 구조조정의 원칙과 일정 고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용경색 때문에 구조조정을 미룰 것이 아니라 보다 전면적인 구조조정으로 신용경색을 풀어야 한다는 주장도 많다. 좌승희(左承喜)한국경제연구원장은 “투신, 종금 등 부실금융기관에 공적자금을 자꾸 퍼붓고, 수익성없는 기업을 억지로 끌고가는 식으로 정부가 환부를 키워왔다”며 “이제라도 부실은 모두 도려내고 청사진을 다시 짜는 작업을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처방2: 리스크를 정부가 떠안아야(응급대책) 금융기관들의 기업여신 회수 및 대출중단 사태를 정부가 강제로 막을 수는 없다. 그렇다고 집단적 여신회수를 그냥 보고만 있을 수도 없다.

삼성경제연구소 정기영(鄭琪榮)소장은 “금융기관들이 기업을 믿지 못하는 신용경색 국면에서 일단 돈이 돌게 하려면 단기적으로는 정부가 기업들의 위험(리스크)을 어느 정도 분담해주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즉 신용보증기금이나 기술신용보증기금, 서울보증보험 등 신용보증기관들에 정부가 자금을 출연, 이들이 기업에 보증을 섬으로써 대출이나 회사채·어음(CP) 발행이 재개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시중은행 여신담당임원은 “98년 신용경색도 결국은 보증기관들의 힘으로 벗어났다”며 “정부는 다소 떼일 것을 각오하고라도 신용보증 여력을 대폭 확충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처방3: 긴축은 금물 아무리 자금흐름에 동맥경화가 발생했더라도 통화공급을 계속 늘리다보면 어려운 기업에까지 조금이나마 돈이 흘러갈 것이란 ‘스필오버(Spill-over)’처방도 제기되고 있다.

일본이 신용경색 타개를 위해 ‘제로금리’정책을 펴고, 98년 국내에도 인위적 저금리·통화팽창 정책을 썼던 것이 대표적 예. 비록 인플레이션 우려로 인해 추가적인 통화팽창은 어렵더라도 적어도 신용경색이 지속되는 한 긴축전환은 타당치 않다는 지적이다. /이성철기자 sclee@hk.co.kr

■4년간 3차례 '신용경색' 위기

국내 금융시장은 최근 4년간 3차례나 ‘신용경색(Credit Clunch)’현상에 처했다. 원인과 세부과정은 달라도, 신용경색은 항상 ‘기업은 연쇄도산, 금융기관은 부실증가’라는 최악의 결말을 빚는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아직은 초기단계이지만 현재 신용경색도 97, 98년의 경색국면과 점차 흡사한 경로를 밟고있다.

■진원지는 금융권 97년 신용경색의 출발지는 종금권. 한보몰락으로 거액부실을 안게 된 종금사들은 미심쩍은 기업들에 대해 만기 기업어음(CP)의 연장을 거부했고, 은행권도 여신회수에 가세했다. 금융권의 무차별 대출환수속에 삼미 진로 대농 한신공영 기아 쌍방울등 굵직한 기업들의 줄도산사태가 벌어졌다.

98년의 신용경색은 퇴출과 합병등 IMF 금융구조조정이 직접 원인. 은행들은 생사의 잣대인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 사수를 위해 무차별 대출축소(회수)에 나섰고, 종금사와 증권사들도 CP할인 중단에 들어갔다. 1~4대 그룹외엔 회사채 발행까지 불가능해지면서 유례없는 대량부도사태가 벌어졌다.

현 신용경색의 발원지는 투신권. 대우 후유증과 새한그룹 워크아웃 등으로 투신권 자금이탈이 빚어지면서 회사채 시장이 마비됐고, 역시 대우타격을 입은 종금사들은 CP연장거부에 돌입했다.

은행권에는 돈이 몰리고 있지만, 2차 금융구조조정을 앞둔 은행의 대출·회사채창구는 거의 막혔다. 국면이 지속될 경우 ‘루머’기업은 물론 일반기업들도 연쇄도산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원인은 다르지만 전개양상은 97,98년과 아주 비슷한 셈이다.

■상이한 처방 97년 신용경색 당시 정부는 연쇄부도를 막기 위해 ‘부도유예협약’이란 장치를 만들었다. ‘부도가 나도 법적 부도처리(어음거래중단)를 하지 않고 여신회수를 강제 유예함으로써 기업들의 여신회수를 막겠다는 일종의 고육지책이었지만, 부실기업 퇴출을 가로막는 수단으로 악용되면서 금융권에 일방적 손실을 안겨줬다. 결과는 IMF체제.

98년 신용경색때에는 ‘부도유예협약’이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으로 대체됐다. 내용은 다르지만 금융기관들의 무차별 여신회수동기를 꺾는다는 점에서는 비슷했다.

다만 부도유예협약에만 의존했던 97년과는 달리 강도높은 저금리정책(경기부양정책) 재정자금과 세계은행(IBRD)·아시아개발은행(ADB)자금등을 총동원한 신용보증재원공급 주식시장부양을 통해 기업자금조달경로를 여신(대출 회사채 CP)시장에서 주식시장으로 전환등 다양한 정책을 구사했고, 신용경색은 상당부분 해소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현 신용경색 타개를 위해선 98년식 처방을 참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성철기자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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