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정상회담을 통해 남북관계의 새 지평이 열리고 있는 분위기를 질적으로 고양시키기 위해서는 실사구시(實事求是)를 바탕으로 한 정부 당국의 치밀한 전략과 국민들의 인내심이 요구되고 있다.전문가들은 먼저 1970년 첫 정상회담이 열린 동·서독 사례를 곱씹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상회담 2년 뒤 기본조약 체결과 동시에 화해·협력 관계가 구축됐던 독일의 경우 베를린장벽 붕괴까지 17년을 기다렸다. 양측의 총구가 불을 뿜었던 남북의 경우 보다 긴 인고의 세월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전문가들은 신 남북시대를 열어나가기 위해 우리 사회가 준비해야 할 대목을 몇갈래로 나눠 제시하고 있다. 첫째가 미국 일본 등 우방국과의 공조 등 대외관계의 재정립이다. 남북관계가 대결위주에서 협력위주로 탈바꿈할 경우 북한을 향한 우리와 미국의 전면적 공조 영역은 필연적으로 축소되거나 조정될 수 밖에 없다.
당분간 안보 분야에서의 빈틈없는 협조관계 유지는 불가피하지만 지금까지 상수(常數)로 여겨졌던 주한미군, 한·미·일 3각 공조체제 등을 변수(變數)로 바라봐야 할 상황을 가정하는 유연한 자세도 필요하다.
정부는 또 냉전시대의 흔적이 깊게 박혀있는 국가보안법, 교류협력법 등 법령을 새롭게 탈바꿈시키고 남북 공동선언 실천과 통일방안 수립 등에 관한 여론을 서둘러 결집해야 한다. 특히 통일방안에 관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작업에 유의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선언 작성의 근거가 됐던 남측 통일방안이 정부공식안(민족공동체 3단계 통일방안)이 아니라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3단계 통일방안이라는 형식적 하자도 유념해야 한다. 물론 두 방안 모두 내용상 동일하다는 점에서 논란은 쉽게 가라앉겠지만 논의 과정을 통해 남측 통일방안이 풍성해질 수 있도록 유도하는 당국의 리더십이 발휘돼야 한다.
아울러 정상회담을 통해 드러난 북한체제와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의 복합적인 측면을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수용, 대응방안을 만들어가는 냉철한 태도도 요구된다. ‘김정일 쇼크’는 얼마 후면 사라질 것이지만 김정일 분석작업은 꾸준히 지속돼야 한다.
특히 정부뿐 아니라 사회 각 분야에 ‘북한을 어떻게 볼 것인가’를 화두로 던져 성실한 답변을 얻어내려는 진지함도 요구된다. 국방분야에서 주적(主敵)개념, 교육현장에서의 통일공동체교육 등은 대표적인 화두가 된다. 화두를 진지하게 풀어가는지 여부는 우리 사회가 신남북시대를 개척할 능력이 있는지를 일러주는 리트머스 시험지다.
이영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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