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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케시타 노보루 전日총리 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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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케시타 노보루 전日총리 타계

입력
2000.06.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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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타계한 다케시타 노보루(竹下登) 전 일본 총리는 시마네(島根)현 출신으로 1944년 와세다(早稻田)대학 재학중 학도병 육군 비행대원으로 임관했다가 패전후 복학했다.1947년 졸업후 한동안 고향에서 중학교 영어교사를 하던 중 1951년 현의회 의원에 당선, 정계에 입문했다.

1958년 중의원 선거에서 첫 당선된 이래 내리 14선을 기록하면서 정치 중심에 나섰다. 1971년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내각에서 관방장관으로 첫 입각,건설성·대장성 장관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1987년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전 총리에 반기를 들어 ‘게이세카이(經世會)’를 발족, 다나카파를 계승하는 형태로 다케시타파를 결성한 이후 자민당과 일본 정계의 주도권을 잡았다. 1987년 11월 총리에 오른 그는 소비세 도입으로 논란을 부른데다 리크루트사의 미공개 주식이 정계로 흘러 든 ‘리크루트 스캔들’에 휘말려 1989년 6월 사임해야 했다.

그러나 그의 정치적 영향력은 사임후에 오히려 커졌다. 당내 최대 파벌을 이끌면서 우노 소스케(宇野宗佑)·가이후 도시키(海部俊樹)·미야자와 기이치(宮澤喜一) 전 총리 등의 후계 내각 탄생에 막후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파벌을 오부치 전 총리에게 물려 준 후에도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오부치 전 총리의 총리 선출에 깊이 관여, 일본 정계의 후견인으로 불렸다.

강력한 지도력을 전면에 내세우기 보다는 치밀한 사전 조정과 설득을 통해 뜻한 바를 이루는 특유의 정치 스타일로 유명했다. 파벌 계승자였던 오부치 전 총리는 이런 정치 스타일의 후계자이다. 그의 타계는 구 오부치파의 구심력을 더욱 떨어뜨려 자민당내 파벌 구도의 재편은 물론 일본 정치변화의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는 또 오랫동안 한일의원연맹의 일본측 회장을 맡아 양국의 의원외교에 힘을 쏟아 왔으며 한국 정계에도 두터운 인맥을 형성했다. 따라서 그의 사거는 한일의원연맹의 앞날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고인을 마지막으로 대하고 추도하는 쓰야(通夜)는 20일 오후 6시 도쿄(東京) 쓰키지(築地) 혼간지(本願寺)에서 열린다. 또 집안끼리의 장례의식인 밋소(密葬)는 21일 오후1시부터 같은 장소에서 열리며 상주는 미망인 나오코(直子)씨.

/도쿄=황영식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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