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의 방북기간중 일어난 일련의 의외성 변화는 그야말로‘역사적’이라는 말에 합당한 엄청난 놀라움 그것이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영접 및 전송, 파격적 의전과 예우, 남북공동선언의 괄목할만한 내용 등이 국내 뿐 아니라 온 세계의 박수를 받았다. 김대중 대통령의 역량과 아울러 김정일 위원장의 유머를 곁들인 친화력도 상당한 득점을 하였다. 모두들 의기양양하고 감격 일색이었다.그러나 국가보안법의 눈으로만 본다면 그것은 온통 ‘반국가적 범죄’에 다름 아니었다. 초청 입북은 ‘반국가단체의 지령에 의한 탈출’이며 사전 협의 ·준비 단계에서의 연락은 반국가단체 구성원과의 통신, 만난 것은 회합, 선물 그밖의 물건을 주고받은 것은 금품수수, 양측이 서로 치켜올리고 감사를 표한 것은 반국가단체(또는 그 구성원)에 대한 찬양·고무가 되는가 하면 저쪽의 제의를 수용한 합의는 동조죄에 해당된다. 서울 귀환조차도 잠입죄가 되는데, 이런 말은 결코 익살이 아니다. 지금까지 법원의 판결에 나타난 법적용의 실제 상황을 그대로 옮겨놓았을 뿐이다.
이런 법을 그대로 두고서는 남북의 화해와 교류·협력은 불가능하다. 정부가 직접하거나 허용하면 합법인데, 국민이 하면 위법이라는 논리는 성립될 수 없다. 최고 권력자가 나서면 ‘역사적 영단’이 되고 국민이 나서면 ‘반국가적 범죄’라는 도식(圖式)은 이 또한 모순이다. 과거 정권 때에 소위 ‘통치행위론’이라는 것을 내세워 변명을 시도한 예가 있지만 시대착오라서 설득력이 약했다.
이처럼 국가정책과 실정법, 국민의식과 실정법이 커다란 괴리를 보일 때 그 법의 운명은 자명하다. 다시 말해서 이번 남북정상회담에 뜨거운 갈채를 보낸 사람은 그것을 범죄시하는 국가보안법의 폐지에 찬성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맞는다. 비단 남북정상회담이라는 사정변경이 있어서 비로소 국가보안법 폐지론이 나온 것은 아니다. 남북 유엔동시가입, 남북기본합의서의 발효 등에서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보는 전제는 이미 무너졌던 것이다. ‘평화애호국가’(유엔헌장 제4조)만이 들어갈 수 있는 유엔에 북한도 함께 들어가자고 한 것이 한국이었으며, 남북간의 관할구역을 명시하고 피차의 체제와 내정에 대한 불간섭을 천명한 남북합의서에 한국도 서명하지 않았는가. 아니 그보다 더 근원적으로 보면 헌법상의 평화통일조항에도 배치된다.
대통령의 이번 방북 및 그 성과는 헌법상의 평화통일정책 수립과 추진(제4조)의 일환이자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대통령의 의무’(제66조)의 이행으로서 당연히 합헌적이다. 따라서 그와 상반되는 규정을 두고 있는 국가보안법은 헌법과 양립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대통령 아닌 국민의 행위만을 여전히 범죄라고 보는 것도 평등권에 위배된다.
남북정상회담 후 정부와 정치권에서는 국가보안법을 그대로 둘 수 없다는 데는 상당한 의견 접근이 이루어졌으나 거개가 부분 개정의 선에서 머물고 있는 듯하다. 즉 ‘반국가단체’조항의 손질, 반국가단체 찬양· 고무· 동조죄와 불고지죄의 삭제 등에서 멈추자는 방안인 듯하다.
그러나 ‘북한공산집단’의 불법성이라는 국가보안법 제정의 대전제가 소멸된만큼 그 법 자체를 폐지하는 것이 마땅하다. ‘정부 참칭’은 삭제하고 ‘국가변란목적단체’만 처벌대상으로 한정하자는 의견이 있는 모양인데, 그렇게 되면 남한 내의 통일지향, 진보성향의 단체만 여전히 탄압대상으로 남을 염려가 있다. ‘국가 변란’이야 일반 형사법으로도 얼마든지 대응할 수 있다. 이번 계제에 국가 정책과 실정법의 상극이라는 국가적 이중성이 대범하게 바로 잡혀야 할 것이다.
/한승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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