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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아리랑에서 통일아리랑으로

입력
2000.06.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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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분단의 고개를 넘어간다평양에서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는 동안 가장 자주 들을 수 있었던 노래는 아리랑이다.

두 차례 만찬과 만경대 학생소년궁전의 축하공연에는 아리랑이 빠지지 않았다. 인민배우와 어린 꼬마들이 아리랑을 불렀다.

그런데, 좀 낯설게 들렸다. 창법이 남쪽의 민요 창법과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꾀꼬리 같다는 표현이 딱 맞게 맑고 고우면서 화사하고 힘있는 음성이었지만, 단단한 돌을 깎아낸듯 하도 매끄러워 어쩐지 자연스런 맛이 없다는 반응도 나왔다.

북한의 성악 발성은 민성과 양성 두 가지로 나뉜다. 민성은 민요 등 전통적 발성이고, 양성은 서양음악식 발성이다.

그러니까 아리랑 등 민요는 민성 창법으로 부른다. 우리 귀에는 나긋나긋하면서 간지럽기도 하고, 트롯트처럼 들리기도 하는 그 민성 창법은 북한 지역 전통 민요인 서도소리 창법을 발전시킨 북한의 발명품이다.

전통의 창조적 계승인 셈이다. 우리는 남도민요나 판소리의 컬컬하고 쉰듯 구성진 맛을 좋아하지만, 북한은 거칠거나 탁한 소리를 싫어해 판소리 발성을 ‘탁성’이나 ‘ 소리’라고 해서 비판한다.

북한식 창법의 아리랑을 놓고 일부에서는 ‘전통음악의 변질’로 비판하지만 아리랑 연구자 김연갑(45·한민족아리랑연합회 상임이사)씨의 생각은 다르다.

“남한 안에서만 봐도 아리랑은 ‘밀양아리랑’ ‘진도아리랑’ ‘정선아리랑’등 지역마다 창법과 스타일이 달라요.

그러니까 북한 아리랑이 남쪽과 다르다 해서 남북의 이질성을 강조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그런 차이는 오히려 아리랑의 생명력과 다양성을 보여주는 자연스런 현상이라고 봐야 합니다.”

상대편의 민요가 희한하게 들리기는 북쪽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1985년 분단 후 최초로 남북한 이산가족이 서울과 평양을 상호 방문할 때 남측 예술단이 평양에서 공연한 데 대해 다음과 같은 평이 나왔다.

“오늘 남조선 괴뢰도당들은 ‘아리랑’ ‘도라지’ ‘양산도’를 비롯한 수많은 민요들을 쟈즈(재즈)화하여 자랑삼아 내외에 들고 다니면서 나라와 민족을 망신시키다 못해 모든 음악을 양풍화하여 민족성을 말살하는데…그리하여 남한에는 양풍화한 음악만이 판을 치고…”(1986년 북한잡지‘조선예술’ 7월호)

남북 아리랑의 맛은 다르지만, 아리랑은 분명 민족의 노래다. 1989년 제 1차 남북체육회담에서 남북 단일팀 단가로 결정된 것도, 그보다 앞서 1988년 3월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아이스하키대회에서 남북한 선수와 동포 1,000여명이 서로 손을 잡고 경기장을 돌며 목이 터져라 불렀던 것도 아리랑이었다.

한반도 뿐 아니라 한민족이 있는 곳이면 전세계 어디에나 그 지역의 아리랑이 있다. 러시아 동포사회의 ‘키르추크 아리랑’, 미국 동포사회의 ‘민들레 아리랑’, 일본 동포사회의 ‘아리랑 야곡’ 등이 그것이다.

통일이 되면 온겨레가 함께 부를 첫 노래, 반세기가 넘는 분단의 세월도 끊지 못한 끈질긴 연결 고리, 그것이 아리랑이다.

아리랑은 몇 가지나 될까. 김연갑씨에 따르면 아리랑은 50여종, 가사는 3,000가지나 된다. 하나의 노래가 이처럼 다양하게 불리는 것은 세계 어디에도 없는 독특한 현상이다.

유네스코는 이 점을 주목, ‘아리랑상’이라는 이름으로 내년부터 세계 구비문학과 무형문화유산 보전에 이바지한 연구자나 단체를 시상한다. 아리랑을 세계 민요의 대명사로 평가한 것이다.

북한에는 20여종의 아리랑이 있다. 그중 ‘랭산 모판 큰애기 아리랑’ ‘영천아리랑’‘경상도아리랑’ 등은 남쪽에서 불리지 않는 것으로, 노랫말에 이념적 색채는 없고 민족 정서에 충실하다.

북한은 민요를 민족음악의 중심에 두고 30년 이상 체계적이고 깊이있는 연구를 해왔다. 1998년에는 아리랑의 모든 것을 창법, 가사, 근원설화, 음악적 가치에 이르기까지 완벽하게 정리한 CD롬을 제작했다.

북한 전역의 민요 발굴 작업을 1960대에 끝내고 구전민요집(1965)과 조선민요집(1969)을 펴냈다. 1980년대 후반에야 비로소 민요의 집중 연구에 착수한 남한에 비해 20년 이상 앞선 것이다.

아리랑은 살아있다. 그것은 민족사의 흐름을 따라 끝없이 이어지는 영원한 생명력의 노래이다. 일제시대 아리랑은 나라 잃은 설움과 조국 광복의 굳은 희망을 노래했다.

분단 직후인 1940년대 말 아리랑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삼팔선 고개에 가마귀 운다/삼팔선 고개는 못넘는 고개/삼천만 원한이 사무치고나’(‘아리랑 삼팔선’)라고 불렸다. 6·25전쟁 당시 정선아리랑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사발그릇이 깨어지면 세 조각이 나는데/삼팔선이 깨지면 한덩어리 된다.’ 통일 운동의 열기가 고조된 1990년대 들어 대학가에는 6-7종의 통일아리랑이 등장하기도 했다.

통일의 기대가 어느 때보다 높아진 지금, 아리랑 후렴구는 이런 것이 되지 않을까.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통일’ 고개로 넘어간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한국전쟁과 아리랑’ 전시회

남북한은 서로 다른 국가를 갖고 있다. 통일되면 새 국가를 정해야 한다.

사단법인 한민족아리랑연합회(이사장 한완상)는 한민족의 동질성을 상징하는 아리랑을 통일한국의 국가로 삼자고 주장한다.

이 단체는 1988년 창립 이래 문화예술을 통한 한민족 공동체 실현을 목표로 아리랑 연구·보급에 힘써왔다.

아리랑을 통일 한국의 국가로 삼기 위해 지난 6년간 수집한 모든 아리랑을 국내외 동포들에게 보내 좋은 곡을 골라서 ‘아리랑 환상곡’으로 만드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를 위해 이미 박범훈, 강준일 등 작곡가에게 작곡을 의뢰했다.

한국전쟁 50주년을 맞아 ‘한국전쟁과 아리랑’ 특별전도 연다.

20일부터 7월 20일까지 한달간 강원 정선의 아리랑 자료관에서 열리는 이 행사는 전쟁 중의 피란일기 10여종, 삐라 20여종, 당시 군대 위문공연의 노래집 등 아리랑 관련 음악 자료 20여종을 선보인다.

그중에는 종전 당시 미 제 7사단이 19개 참전국 군인들의 귀국 기념품으로 제작한, 아리랑 악보와 참전국기가 그려진 페넌트도 들어있다. 문의 한민족아리랑연합회. (02)739-5014.

■혁명가곡 중요장면마다 삽입

북한의 아리랑

●영천아리랑

아주까리 동백아 더 많이 열려라

산골집 큰애기 신바람난다

아라린가 쓰라린가 영천인가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오

멀구야 다래야 더 많이 열려라

산골집 큰애기 신바람난다

줄참외 밭참외 가득 따 놓고

앞집의 큰애기 님 생각하네

멀구야 다래야 더 많이 열려라

산풍년 들풍년 만풍년 들어라

울넘어 담넘어 님 숨겨두고

호박잎만 난들난들 난 속였소.

●경상도 아리랑

만경창파에 떠가는 배야

거기 좀 닻 주어라 말 물어보자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문경새재는 어드멘고

구부야 구부야 삼백릴세.

●랭산모판 큰애기 아리랑

아라린가 쓰라린가 염려를 마오

큰애기 가슴도 노래로 찼소

종달새 꾀꼴새야 울지나 마라

큰애기 가슴도 노래로 가득찼소

종다리 꾀꼴새야 울지나 마라

조합의 큰애기 일 못할라

아라린가 쓰라린가 염려를 마오

큰애기 정렬이 모판을 덮소

바람아 눈비야 내리지 마라

랭산모판 큰애기 잠못들라

아라린가 쓰라린가 염려를 마오

큰애기 가슴도 모판을 덮소

‘아리랑만큼 인민들의 정서를 잘 형상화시킬 좋은 민요는 없다. 이를 이용하라.’

북한이 1990년 발간한 단편소설집 ‘아리랑’에 나오는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말이다.

이 소설은 소재가 없다고 고민하는 음악가에게 김위원장이 아리랑을 다루라고 충고함으로써 답을 준다는 내용이다. 북한은 실제로 ‘피바다’ 등 혁명가극의 중요 장면마다 아리랑을 넣고 있다.

아리랑 연구자 김연갑씨는 북한이 아리랑을 얼마나 중시하는지는 일제시대 영화인 나운규의 ‘아리랑’에 대한 평가에서도 알 수 있다고 지적한다.

나운규의 ‘아리랑’은 나라 잃은 민족의 비애를 그린 작품으로 북한에서 민족영화 1호로 꼽힌다.

영화광으로 이름난 김정일 위원장은 일본에 있다고 알려진 이 영화의 필름을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꼭 찾아올 것을 지시, 그 필름이 북한에 있다는 소문도 무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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