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의 당사자인 남북이 ‘6·15 공동선언’을 통해 한반도 문제의 해결을 자주적으로 모색하기로 합의함에 따라 4강의 절대적 영향력이 유지돼온 한반도 문제 해결에 큰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그동안 7·4 공동성명’등 한반도 문제의 자주적 해결 원칙을 강조한 합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남북 최고지도자가 서명한 이번 선언 만큼의 실천력을 담보하지는 못했다.
특히 이번 선언은 국제무대에 올려졌던 한반도 문제를 분단 당사자의 손안으로 복귀시킴으로써 적어도 한반도와 주변 4강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윈-윈적 상황을 남과 북이 주체가 돼 열어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새로운 희망은 남북정상회담 직후 나온 4강의 환영 성명에서 싹트고 있다. 내면적으로는 남북 정상회담의 득실을 따지며 새 동북아전략을 구상 하겠지만 현단계에서의 환영표시는 남북이 주도한 해빙의 분위기를 일단 반길 수 밖에 없다는 현실 인식을 반영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에 남북의 화해는 동북아 정세의 안정적 기반위에서 자국의 경제성장에 전념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일본도 북한의 미사일 발사 위협에서 벗어나 수교협상의 진전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특히 남북 경협의 확대와 평화적 환경 조성은 북한의 연착륙을 유도, 북한을 세계 시장경제로 편입시키고 대량 살상무기 확산을 방지하려는 미국의 세계 전략과도 일치한다.
그러나 남북 정상회담 결과가 주변 4강과의‘공생’분위기만을 조성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남북간 대치 상황을 동북아에서의 세력확장의 기회로 이용했던 4강들은 이제 남북 해빙을 맞아 세력 재편을 꾀하고 있다.
미국은 남북간 자주 원칙의 강조가 한반도에서의 위상 퇴조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고 있으며 중국은 미국의 영향력을 견제하는 명분으로 자주적 해결원칙을 부각시키려 하고 있다. 러시아는 북한과의 관계개선으로 한반도에서의 영향력 부활을 노리고 있고 일본은 남북간 화해로 인한 발언권 약화를 경계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은 남북을 매개로 한 공존과 견제의 새로운 게임이 한반도에서 이미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한·미·일 3국공조, 미국의 국가미사일방어(NMD)구상을 저지하려는 북한·러시아·중국의 전략적 제휴, 북미, 북일 관계의 진전, 남한과 중국·러시아의 경제력 협력 확대 등 얽히고 설킨 이해관계가 한반도 정세의 흐름에 영향을 줄 것이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15일 평양방문을 마치고 서울 공항도착에서 가진 보고에서 “이제 4강이 우리를 지배하는 제국주의 시대가 아니라 우리가 그 한복판에서 4강을 이용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다”고 말했다. 4강과의 현실적 관계속에서 주체적 외교역량을 키우는 지혜가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김승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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