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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가뭄…견실한 기업도 목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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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가뭄…견실한 기업도 목타

입력
2000.06.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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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시장 '자금난' 일파만파 우려“이대로 가다가는 몇개 상위그룹 계열사 외에는 살아남을 기업이 없다.”

영남종금 영업정지, 새한그룹 워크아웃, 현대건설과 한국종금의 유동성 위기 등의 여파로 기업들이 극심한 돈가뭄에 시달리며 ‘부도의 벼랑’으로 내몰리고 있다.‘수천억원대의 회사채·기업어음(CP) 만기 도래→회수 압박 및 차환발행 중단→신용도 낮은 기업 자금악화→대다수 중견기업으로 자금난 확산’의 악순환이 현실화하면서 또다시 경제위기론이 머리를 들고 있다.

이에 놀란 정부가 16일 10조원대 채권전용펀드 조성, 단기 신탁상품 허용 등의 ‘응급처방’을 내놨지만 정부-금융권-시장이 서로 불신하는 현실이어서 정책의 실효성이 크게 의문시되고 있다.

■하루하루 피마른다

연매출 1조원 규모의 중견기업인 A사 임원들은 요즘 ‘디지털 경영’이니 ‘21세기 마스터 플랜’이니 하는 업무는 모두 제쳐두고 투신사와 종금사, 주채권 은행에서 살다시피 한다.

이 회사에 돌아오는 CP는 월 40여건, 규모로는 4,000억원. 50억-100억원짜리로 발행한 CP에 대해 올초까지만 해도 금융기관들이 1-2개월 단위로 재연장해줬으나 지난달 말부터는 초단기(7-10일)로만 연장해주는 바람에 사장, 부사장, 자금담당 전무, 실무자 가릴 것없이 매일매일 피말리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이 회사의 한 자금담당 임원은 “우리가 거래해온 B투신사에서 최근 자금이 많이 빠져나가는 바람에 사장이 지시했는데도 실무진이 말을 듣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회사 사정이 워낙 다급해 자괴감을 느낄 겨를조차 없다”고 털어놨다.

■하반기 무더기 도산 우려

지난해 알짜 계열사를 대거 매각해 부채비율을 150% 미만으로 낮춘 굴지의 건설회사인 C사도 초비상이다. 이 회사는 지난달 600억원의 회사채를 가까스로 발행했으나 이달 들어 추가발행하려던 500억원 어치는 아예 엄두도 못내고 있다.

이 회사의 한 간부는 “금융기관들이 CP나 회사채를 도대체 연장해주지 않으려 하고 있다”며 “비교적 건실한 우리 회사가 간신히 ‘연명’해가는 정도니 업종 특성상 부채가 많은 대다수 다른 건설업체의 무더기 도산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 회사의 신용도는 BBB+. 채권시장에서는 이보다 높은 A-단계 기업도 만기연장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때문에 현재 채권시장에서 회사채가 제대로 거래되는 기업은 20여개에 불과하다.

문제는 6월 이후 연말까지 만기가 돌아오는 31조원 규모의 회사채 64%가 시장에서 전혀 매수세가 없는 BBB등급 이하 채권이라는 것. 특히 연말에 10조원의 회사채 만기가 몰려있어 투신권의 매수여력이 제도적으로 확보되지 않는 한 또다른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대안은 없나 이수희(李壽熙)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상황과 관련, “갈팡질팡하는 정부의 정책이 오늘날 위기를 낳고 있다”며 “우선 정부가 부실 책임분담 문제라든지 금융권 구조조정 방향을 명확히 설정하고 실행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박성원(朴成原)현대투신 채권전략팀장은 “투신사 비과세펀드를 조속히 시행해야 하며 펀드의 한도도 현재 논의되고 있는 2,000만원에서 5,000만원 이상으로 대폭 높여야만 실효성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연구원 고성수(高晟洙)박사는 “영업기반이 붕괴되고 있는 투신·종금 등 제2금융권의 근본적인 정상화 방안이 조속히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정규기자

jkpark@hk.co.kr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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