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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역도우미 할아버지들

입력
2000.06.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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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오전 11시30분 서울 인사동. 일본관광객으로 보이는 20대 여성 두 명이 관광안내책자를 보며 어딘가를 찾고 있다. 이때 ‘통역(通譯)’이라고 쓰인 회색 조끼를 입은 할아버지 두분이 다가가더니 유창한 일본어로 길을 한내한다. 이 분들은 인사동에서 길을 찾는 외국인들을 도와주는 ‘통역도우미’ 할아버지들.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쳤고 교장까지 지내다 정년퇴임했다는 윤원열(尹元烈·72·서울 은평구 증산동)씨는 “국위선양을 하는 마음으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며 “우리로 인해 관광객들이 한국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지고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통역도우미’는 1993년부터 탑골공원에서 노인무료급식을 해 온 사랑채의 김금복(金金福)대표의 제안으로 1일부터 활동을 시작했다. 34명이 지원, 면접을 거쳐 외국어에 능통한 14명을 선발했다.

김대표는 원서를 받아보고 나서 놀랐다고 전한다. 교장선생님, 국방부 공보담당 장교, 목사, 일본어 강사, 번역가, 미군부대 근무자 등 출신이 너무도 다양했고 외국어 실력도 뛰어났기 때문이다. 일어 영어 중국어 러시아어 스페인어등 통역가능한 언어도 다양했다. 김대표는 “노인들이 느끼는 가장 큰 고통은 가난이 아니라 ‘이제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절망”이라며 “그들이 능력을 발휘해 봉사할 기회를 제공해 스스로 긍지를 느끼게 한다는 뜻에서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주변의 반응은 예상보다 좋다. 먼저 다가와 도움을 청하는 외국인들도 많고 인사동 점포주인들도 적극 도움을 청하게 됐다. 하지만 아직 전문적인 관광지식이 없어 아쉬운 면도 있다. 통역도우미 회장을 맡고 있는 김기태(金琪泰·79·서울 강서구 화곡동)씨는 “외국인들이 좋은 식당을 소개해 달라면 마땅한 곳을 몰라 미안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며 “관광공사에서 안내책자를 가져다 우리끼리 공부도 시작했다”며 보다 좋은 안내를 약속했다.

인천에서 봉사활동을 위해 매일 인사동으로 나온다는 홍문식(洪文植·74·인천 계양구 계산동)씨는 “내가 통역봉사활동을 한다고 하니까 손주녀석이 일본어 좀 가르쳐 달라고 조른다”며 “이 나이에도 인정받는 것이 있다는 사실이 기쁘다”고 웃었다.

사비로 이 일을 돕고 있는 김대표는 50명정도까지 인원을 늘려 경복궁 비원 남대문시장 등에서도 봉사활동을 할 계획이다.

김기철기자

kim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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