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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선언/은둔서 해방된 '지도자 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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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선언/은둔서 해방된 '지도자 동지'

입력
2000.06.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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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간의 김정일 모습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한 3일동안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당당하게 TV카메라 앞에 서서 자신을 완전 노출시키며 세계의 이목을 한곳에 모았다.

이제 세계인들은 김위원장을 더이상 ‘은둔의 지도자’‘베일속 지도자’로 부를 수 없게 됐다. 정치적 효과를 노린 의도적 연출이든, 아니면 김위원장의 지도자적 역량과 인간적 품성이 드러난 것이든, 김위원장은 자신의 말대로 ‘은둔에서 해방’된 것이다.

◇파격속 의표찌르는 언행

13일 김위원장이 김대통령을 맞기 위해 순안공항에 직접 영접을 나온 이후 김위원장의 행동은 파격의 연속이었다.

엄청난 다변으로 오히려 김대통령이 말할 기회를 찾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던가, 말할 때 오른손 등으로 제스처를 쓰기를 즐긴다든가, 소파에 앉을 때 오른쪽에 무게를 실어 조금 비스듬하게 앉는다든가 하는 김위원장의 일거수 일투족이 우리에게는 파격으로 보였다.

이제까지 몰랐던 진면목을 보는 충격도 있었을 것이다. 그의 거침없고 자신에 찬 언행, 권위적이라기 보다는 소탈해 보이는 웃음등이 또 그의 전형적인 모습인 것처럼 기억될 수도 있다. 그러나 김위원장의 파격은 파격 자체로 끝나지 않았다.

13일 제1차 정상회담때 김대통령에게 “장관들도 동참해서 힘든, 두려운, 무서운 길을 오셨습니다”라고 말한 것은 한편으론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의표를 찌르는 발언이었다. “공산주의자에게도 도덕이 있다”고 말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1차 정상회담때 “남쪽에서는 광고를 하면 잘 되는지 모르지만 우리는 실리만 추구하면 됩니다”라고 말한 것은 경협 등 우리와의 관계에 대해 김위원장이 어떤 인식을 갖고 있는 지와 관련, 음미해 볼 대목이다.

항상 자신에 넘쳤던 김위원장에게도 그의 현실감각을 생각하면 ‘자격지심’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만한 발언이 있기는 있었다. 김위원장은 1차 정상회담때 어떤 말끝에 “여러분들이 와서 보고 알겠지만 부족한 게 뭐가 있습니까”라고 말했다.

◇영도자 이미지 관리

김위원장은 파격의 연속속에서도 의도적이든, 아니든 북한을 통치하는 영도자로서의 이미지를 전세계에 유감없이 과시했다.

13일 1차 정상회담 직전 우리측 대표단과 백화원 영빈관에서 기념촬영을 할 때 김대통령 뿐만아니라 우리측 공식 수행원들에게도 친근감을 나타내며 배려하는 모습을 보였다. 김위원장이 우리측 수행원들을 배려하는 모습은 그후에도 종종 TV화면에 잡혔다.

김위원장은 14일 밤 역사적인 공동선언에 서명한 후 서명장소를 빠져 나오면서 복도에서 김대통령을 잠시 기다리게 하고 임동원 특별보좌역에게 무엇인가 자꾸 말을 시키는 장면을 연출했다.

이는 경우에 따라서는 의도된 연출이라는 느낌을 줄 수도 있다. 15일 고별 오찬석상에서는 우리측 이기호 경제수석에게 이날 오전에 시찰했던 ‘닭공장’에 대한 질문을 던져 긍정적인 답변을 유도해 내기도 했다.

김위원장은 공항 직접 영접에 거듭 감사를 표시하는 김대통령에게 “제가 무슨 큰 존재라도 됩니까”라고 겸손함을 보였지만 김용순 노동당대남담당비서를 ‘용순 비서’로 부른다던가, 15일 만찬때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에게 만찬사 답사를 대독시킨다던가 하는 은연중 행동으로 북한의 최고 실력자임을 과시했다.

15일 만찬때 북한군 장성들로 하여금 김대통령에게 술을 따르게 한 것은 그들의 연회문화를 짐작케 할 뿐만 아니라 김위원장의 평소 스타일을 떠올리게 한다. 남한 TV및 신문에 대한 관심에서부터 환경문제, 김치 얘기, 닭공장에 대한 관심 등 다방면에 걸쳐 박학다식함을 다변으로 쏟아내는 김위원장은 실용주의적 ‘지도자’로 비치기에 충분했다.

◇▲유머등 드러난 인간적 면모 및 예술취향

김위원장을 얘기할 때는 이제 그의 유머를 빼놓을 수 없게 됐다. 1차 회담이 끝난 뒤 우리측 안주섭 경호실장에게 “걱정하지 마십시요”라며 의표를 찌르는 농담을 던졌다.

14일 만찬때 이희호 여사에게 “이산가족이 되면 안되지요”라며 김대통령 옆으로 자리를 옮겨준 것도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준 것이다. 또 이 만찬때는 자신이 너무 말을 많이 한다고 느꼈는지 “제가 너무 경거망동한 것 같습니다”라며 민망함을 나타내기도 했다.

그의 언행에서는 후계자로 자라난 일종의 ‘귀족 취향’도 간간이 드러났다. “개성음식이 맛있다고 해서 개성토박이에게 만들게 했더니 양이 적더라”는 말도 했고 15일 고별 오찬때에는 와인맛을 시식한 뒤 “좋다”라고 하면서 와인에 대한 식견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가 우리 영화 ‘춘향뎐’이 칸 영화제에 출품됐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에서는 그가 영화광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하는 동시에 그의 예술적 취향도 느낄 수 있게 한다.

고태성기자

tsgo@hk.co.kr

■김정일위원장 말말말

"제가 무슨 큰존재라도 됩니까 너무 경거망동한것 같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3-15일 평양을 방문한 김대중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남북관계 뿐만 아니라 문화·예술·음식 문제 등 다방면에 걸쳐 수많은 말들을 쏟아냈다. 그는 “김대통령이 오셔서 (내가) 은둔에서 해방됐다고 그래요”라고 농담을 하는 등 수다스러울 정도로 많은 얘기를 함으로써 과거의 ‘은둔자’이미지를 일거에 불식시켰다.

“김대통령의 용감한 방북에 대해 인민들이 용감하게 뛰쳐나왔습니다.”

“자랑을 앞세우지 않고 섭섭하지 않게 해드리겠습니다.”

“(북측) 신문과 라디오에는 경호 때문에 선전하지 못했습니다. 남쪽에서는 광고를 하면 잘 되는 지 모르지만 우리는 실리만 추구하면 됩니다.”

“공산주의자도 도덕이 있고 우리는 같은 조선 민족입니다.”

“6월 13일은 역사에 당당히 기록될 날입니다.”

“(김일성) 주석님께서 생존했다면 주석님이 (승용차 옆자리에) 앉아 대통령을 영접했을 것입니다. 서거전까지 그게 소원이셨습니다.”

“지금 세계가 주목하고 있죠. 김대통령이 왜 방북했는지, 김위원장은 왜 승낙했는 지에 대한 의문부호입니다. 2박3일동안 대답해줘야 합니다.”

“어제 남쪽 텔레비전을 오랫동안 봤습니다. 남쪽 인사들도 다 환영하고 특히 실향민, 탈북자들은 눈물을 흘리며 이번 기회에 고향 소식이 전달될 수 있지 않나 하면서 속을 태웁디다.”

“제가 무슨 큰 존재라도 됩니까. 구라파 사람들은 나보고 왜 은둔생활하느냐 그러는데 나는 중국, 인도네시아도 비공개로 많이 갔다 왔는데. 김대통령이 오셔서 은둔에서 해방됐다고 그래요. (웃음) 그런 말 들어도 좋아요.”

“지난번에 중국 갔더니 한국식 김치가 나와서 남쪽 사람들 큰일 냈다고 생각했습니다.”

“김대통령께서 백두산에 한번 올라가셔야 합니다. 제가 한라산에 한번 가보고요.”

“서울의 신문들을 보니까 기자 어른들이 평양 시내가 한적하다고 썼더라. 한적하다는 말에는 뭐가 없다는 의미가 아니냐.”

“제가 너무 경거망동한 것 같습니다.”

“이산가족이 되면 안된다.”(이희호여사가 헤드테이블이 아닌 일반 참석자 테이블에 앉아있는 모습을 보고)

“ (사진촬영을 위해) 연단에 두번 나갔으니 출연료를 받아야되겠다.”

“얼마전 칸영화제에 남측이 출품한 `춘향뎐'이 본선에 올랐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처음에는 ‘전’자를 ‘뎐’자로 잘못 쓴 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 ‘뎐’이 맞더라.”(만찬이 끝난 뒤 승용차에 오르기 직전)

“(남측 언론들이) 술 마시는 것을 보면서 김정일 위원장의 술 실력이 (김대통령보다) 낫다고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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