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흘린 눈물보다 더 많이 울었어요"파리하고 초췌한 얼굴에 멍한 눈길, 상우(이재룡)가 없는 공장에서 파르르 떨리는 손길로 미싱을 어루만진다.
촬영 도중 여전히 축 처진 어깨와 힘없는 목소리로 표민수 PD에게 묻는다. “이 장면에서 눈물을 흘려야 하나요?”
정말 옥희가 되어 버린 걸까. “요즘 몸이 너무 안좋아요, 밥맛도 안나고 기운도 없다”고 한다. 변신의 고통이다.
“대본에 자주 나오는‘눈물이 그렁해서’‘마음 아픈’‘울먹한’같은 맺힌 감정들은 속시원하게 말을 하거나 울음을 터뜨려서 표현할 수는 없잖아요. 그저 그런 시늉이 아니라 마음속도 울컥하게 해야 하니까요”
그 고통의 강도가 더해갈수록 사람들은 옥희에 빠져들고 배종옥에게 찬사를 보낸다. 그녀의 아픔은 ‘행복한 고통’인 셈이다.
15년 연기생활에서 흘린 눈물을 다 합친 것보다 더 많이 울었다는 배종옥.
이지적인 이미지서 탈피
'순수한 바보 옥희' 변신
"가슴 울컥한 연기 어려워"
드라마가 마지막으로 치닫는 요즘 팬들은 옥희와 상우의 사랑이 이루어져야 한다느니, 임신한 아내를 두고 상우가 그럴 수는 없다느니 하며 치열한 논쟁을 벌이고 있다.
“글쎄요, 결말이 그렇게 중요할까요? 이루어져도, 깨져도 모두에게 가슴 아픈 사랑이잖아요. 어쩌면 사랑 그 자체가 고통인 것 같아요.”
바보와 순수를 넘나드는 옥희라는 캐릭터에 배종옥의 캐스팅은 사실 무척 의외였다. “처음에 너무 걱정을 많이 했어요.
조금만 어설퍼도 ‘저 잘난척하는 여자가 그렇지 뭘’하는 소릴 들었겠죠.”자다가도 옥희 생각에 벌떡 일어날 정도였다는 그녀.“촬영장에서 나오는데 한 아줌마가 ‘저기 바보 간다!’고 그러데요, 그럼 어느정도 성공한건가?”
2년전 ‘거짓말’처럼 이 드라마도 ‘컬트’니‘마니아’니 하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왜 그럴까.
“아마도 그 진지하고 사실적인 시선이 익숙치 않아서일까요? 실제 사는게 그렇잖아요. 먹고 사는 것 때문에 구차해지고, 한쪽을 사랑하면 다른 한 쪽이 걸리고….
하지만 그 4%의 시처률이 얼마나 무서운데요, 드라마 흐름과 연기를 손금 보듯 읽고 있으니까요. 건성으로 줄거리만 보는 몇십 퍼센트의 시청률보다 훨씬 부담스럽죠.
왜 공산주의 국가도 아닌데 그런 획일적인 잣대를 좋아하는지 모르겠어요. 한 두 사람이라도 진정한 팬을 위한 드라마가 있어야 하는데…”
인터뷰가 끝날 무렵 그녀가 던진 질문. “그런데, 상우와 옥희의 사랑이 정말 불륜인가요? 일생에 단 한번 그런 사랑을 만났는데 결혼했다는 이유로 죄가 되는 건가요?” 언젠가 들은 것 같다. ‘거짓말’을 할 때였다.
유부남을 사랑했다는 이유로 헤어지면서 그는 똑같은 생각을 했었다.
양은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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