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대통령의 2박3일간 평양 방문과 그에 따른 역사적 이벤트는 남북관계의 근간을 뒤흔들어 놓았다. 이제부터 남북관계는 엄청난 변화가 올 것이다. 어떻게 단 3일만에 이런 변화가 온 것일까, 국민들은 얼떨떨하기 만하다. 너무나 갑작스럽게 찾아 온 화해의 기류가 도무지 실감나지 않는다.■그러나 정작 국민들이 놀란 것은 이런 변화를 가능케 한 김정일국방위원장의 태도에 있다. TV를 통해 생생하게 전달된 김 국방위원장의 언행 하나하나는 국민들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때로는 예의 바르게, 때로는 소탈하게, 때로는 거침없어 보이는 그의 언행은 하나의 쇼크였다. 기존 인식의 틀을 일거에 허물어 버리는 이런 쇼크요법을 그는 계산했을지도 모른다.
■인식의 혼돈현상은 첫날부터 왔다. 평양 순안공항, 김 대통령과 김 국방위원장이 두손을 맞잡고 환한 얼굴로 상봉하고, 그 옆에는 인민군 의장대가 총검을 곧추 세우고 이를 지켜 보고 있다. 분명 상상하기 어려웠던 장면이다. 우리측 방송기자가 감동어린 목소리로 현장의 모습을 전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께서 …하신다”라고. 그는 또 전한다. “김대중 대통령이 …한다”라고. 그의 멘트는 계속 이상했으나,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인식의 혼돈현상 탓이다.
■이런 혼돈현상은 장년과 중년, 젊은 세대, 그리고 청소년과 어린이 등 세대별로 편차가 있을 것이다. 특히 6·25를 경험한 세대가 겪는 인식의 혼돈현상은 남다르리라 생각된다. 김 국방위원장과 그에게 권력을 세습한 아버지 김일성주석에 대한 인식은 여태까지 동일선상이었다. 김일성주석을 좋게 보는 사람은 사회주의 이념꾼들을 제외하곤 남한내에 없다. 그러나 인식은 인식이고 현실은 현실이다. 김 국방위원장은 우리가 숙명적으로 상대해야 할 북한의 최고지도자다. 그렇다고 김 국방위원장의 이미지를 억지로 만들려 할 필요는 없을 것같다. 국민들 사이에서 이런 인식의 혼돈과정을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정리될 것이기 때문이다. 당분간은 우리와 친하게 지내려는 나라의 대통령쯤으로 생각해 두는 것도 좋겠다. /이종구 논설위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