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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 이제는 차분한 머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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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06.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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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0만 한민족은 물론이고 60억 전세계의 시선이 몰린 13일 오전 평양에서는 예상 밖의 일들이 연속으로 일어났다.국제적으로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김정일국방위원장이 북한의 최고지도부를 인솔해 평양 순안공항까지 직접 영접 나왔고 ‘대한민국’이라는 국호와 태극기가 선명하게 새겨진 대통령 전용기 앞에서 김대중대통령을 아주 반갑게 맞았다.

남한의 대통령이 북한 인민군 의장대를 사열하고 분열도 받았다.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말이 무색할 일들이 벌어진 것이다.

김위원장이 김대통령의 승용차에 동승한 것도 파격이었지만 김대통령에게 상석(上席)을 권하고 그것도 김대통령이 완전히 좌정한 연후에야 차에 오르는 등의 극진한 동양적 예절이 사람들을 더욱 놀라게 했다.

이렇게 특별한 의전은 남북 정상회담에 임하는 북측의 자세가 적극적이라는 것을 우선 말해준다. 그러다보니 두 정상이 만나는 것만으로도 역사적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던 국민들의 기대가 하루아침에 갑자기 불어난 느낌이 든다.

언론도 회담의 성과에 대해 매우 낙관적인 보도를 하고 있다.

평양공항에서 백화원 영빈관까지의 연도에는 60여만의 평양시민들이 도열하여 ‘김정일’‘김대중’을 연호했고 김대통령 내외분께 꽃다발도 여러 차례 드렸다.

상상을 뛰어넘는 환영행사였다. 구(舊)소련이나 중국의 지도자들도 그런 대접은 받지 못했을 것이다. 광폭정치(廣幅政治) 인덕정치(仁德政治)를 표방하고 ‘통이 크다’는 것을 강조해 온 김위원장이 직접 기획하고 연출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장면들을 보면서 “오는 정이 저 정도면 가는 정은 더 커야 할텐데”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의 선의를 계산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남부끄러운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면서…. 그렇다고 북쪽에 무엇을 주어서는 안된다는 것의 의미는 결코 아니다. 경직된 상호주의를 적용하자는 것도 아니다.

어차피 우리는 북한을 도우려 하고 있다. 다만 북이 실리차원에서 우리로부터 받을 것은 최대한 받으면서도 ‘근본문제’등을 거론하면서 줄 것은 최소한으로 하려고 미리 저렇게 극진한 대접을 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저러나 55년간 반목하고 불신하면서 적대해 오던 남북의 정상들이 역사적 상봉을 한 2000년 6월13일을 후세의 사가들은 분단과 통일의 분수령으로 기록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평양 남북정상회담의 역사적 의의는 아무리 강조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는다.

그러나 천리 길을 한숨에 달려 갈 수는 없는 법이고 한술 밥에 배부를 수도 없다. 그리고 회담에는 상대가 있는 법이다. 김정일위원장도 회담준비를 웬만큼 했겠는가.

김대중대통령이 형무소에서 김일성주석과 상상(想像)으로 장기를 여러 번 두었듯이 김정일위원장도 김대통령과 상상으로 장기를 많이 두어본 뒤 남북 정상회담을 수용했을 것이다.

그러기에 김대통령도 13일 아침 출발성명에서 “민족을 사랑하는 뜨거운 가슴과 현실을 직시하는 차분한 머리”를 강조하지 않았겠는가.

이번의 남북 정상회담은 불과 2박3일이라는 짧은 일정으로 진행되고 있다. 물론 하룻밤에도 만리장성을 쌓을 수는 있지만 남북간에 풀어야 할 문제에 비하면 50여시간 전후의 평양체류는 턱없이 짧다. 그러기에 환호와 열광과 흥분은 하루로 족하다.

이제는 차가운 머리로 회담이후 남북관계와 한반도 주변정세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를 헤아리고 그 속에서 우리의 민족이익과 국가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할 것인지, 정상회담에서의 합의를 이행해 나가는데 있어서 국내외적으로 겪게 될 어려움은 없을 것인지에 대해 챙기기 시작해야 할 시간이다.

김대통령은 차분한 머리와 실사구시(實事求是)정신으로 회담을 운영해 가능한 범위내에서 최선의 성과를 거두리라 믿는다.

평양쪽 일은 대통령과 수행원들에게 맡기고 서울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대통령이 돌아온 이후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준비를 해야한다. 국민들도 김대통령이 안고 올 성과를_그것이 크든 작든_일상의 생활과 연결시키고 조화시킬 준비를 해야할 것이다.

정세현(丁世鉉)전통일부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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