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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벤처는 평양

입력
2000.06.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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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벤처는 평양귀순한 北물류전문가 경험 바탕으로 소개

이제 벤처는 평양이다

방영철 지음, 김영사 발행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북한의 몽금포 모래를 4시간밖에 안걸리는 서해 바닷길로 가져와 유리로 가공하라’ ‘맥주 한 잔을 위해 3시간을 기다리는 평양에 호프집을 차려라’ ‘북한에 결혼혼수용품 사업과 종이컵 사업을 시작하고, 북한의 단고기와 강냉이를 남한으로 가져와라’

북한에 공장을 세우고 협력사업을 벌이는 것이 대기업만이 하는 일로 알면 이제는 오산. 소규모 벤처기업도 얼마든지 북한에 진출할 수 있고 나름대로 멋진 ‘장사’를 할 수 있다.

물론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남북경제협력이 지금보다 더욱 활성화할 경우를 가정해서다.

평양에서 태어나 1997년 귀순한 방영철씨가 지은 이 책은 ‘성공하는 북한 비즈니스 아이템’을 미리미리 준비해보자고 만든 책이다.

나진해운대 출신에 북한 물류시스템 전문가로 활동했던 저자이기에 더욱 믿음이 간다.

저자는 우선 북한 비즈니스에 앞서 북한에 대한 다각적이면서도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매장량 4억5,000만톤으로 세계 3위인 마그네사이트, 234만톤에 달하는 금매장량(‘노다지’라는 말도 북한 운산광산에서 유래했다), 낙연 보석광산을 비롯한 10여개 보석광산에 묻혀있는 홍보석과 녹보석 등 무진장한 보석원료 등 천연자원은 세계 일류급이다.

매장량이 세계 10위권에 드는 광물만도 중석 몰리브덴 흑연 등 7종. 효녀 심청이 빠진 장산곶이 있는 몽금포는 일본이 수입해갈 정도로 고품질인 모래가 가득하다.

인력자원과 첨단기술 수준도 상당하다. 1,000여명의 대졸 출신 프로그래머들이 모인 조선컴퓨터센터. 워드, 네트워크, 계측제어, 게임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해 해외에 수출할 정도로 이들의 실력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군사 무기와 소프트웨어 개발에 대한 북한의 관심과 정책적 지원때문.

수학 물리학 화학 생물학 등 북한의 기초과학 분야는 남한을 추월했다. 무기 개발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모스크바종합대, 레닌그라드공업대 등에 수재들을 유학보내 공부시켜왔기 때문이다.

이밖에 미사일 개발로 이룬 항공우주산업, 인체실험으로 발전시킨 생명공학, 당이 직접 관여해 발전시킨 첨단 소프트웨어 공학, 세계 수준의 애니메이션 등. 저자는 이를 ‘북한에서 벤처가 성공할 수밖에 없는 6가지 이유’로 부른다.

하지만 북한에는 이같은 풍부한 자원과 기술력에도 불구, 외화부족과 전력난, 식량난 등 폐쇄된 사회구조에 따른 내부 경제형편때문에 ‘제 실력의 10%밖에’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이 열악한 현실을 꿰뚫어보는 것이 사업 성공의 지름길이고, 이 책을 통해 저자가 가장 강조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광통신망은 전혀 구축돼 있지 못하며, 무선통신은 전신전화국을 통한 팩스와 전보밖에 없다. 개인의 인터넷 사용은 금지됐고, 660개의 철도역 중 전산화가 돼 있는 곳은 단 한 군데도 없다.

그러면 어떠한 벤처사업이 성공할 수 있을까? 저자는 무려 133가지 아이템을 들었지만 그중 무릎을 탁 칠 만한 몇가지만 살펴보자.

‘공짜나 다름없는 보석을 사다가 외국에 팔아라’. 북한 사람들은 보석을 사치품으로 생각하지 않는데다, 북한 정부 자체가 보석을 자본주의 문화라고 해서 개인의 보석 착용을 금지해 보석이 헐값이기 때문이다. ‘재건축 폐기물을 북한에 팔아라’. 북한에서는 깨진 벽돌도 기초공사에 사용한다.

또 있다. ‘웨딩홀과 혼수용품사업을 벌여라’. 북한에서는 1년에 대략 40만쌍이 결혼하는데 웨딩홀이 없어 99%가 집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있다.

‘아기 기저귀와 생리대 사업을 시작하라’. 지금도 천으로 만든 기저귀와 생리대를 사용하며 1회용 생리대가 없다. ‘북한 감자를 수입해라’. 감자 가격이 1㎏당 우리나라 돈으로 150원에 불과하다.

심지어 남북한 언어 이질화를 감안한 ‘남북한 언어전문가가 되라’도 있다.

그러면 이 책은 어떻게든 북한을 이용해 ‘수지맞는 장사’를 독려하는 얄팍한 사업교본에 불과한가? 포장은 그렇지만 속내는 아니다.

북한과 북한주민의 삶에 대한 우리의 몰이해와 편견과 무관심에 대한 따끔한 충고이자 진심어린 호소이다. 도대체 우리가 북한에 대해 정확히 아는 것이 뭐가 있는가?

경기 침체로 연간 5,000톤이라는 엄청난 양의 북한산 동(銅)이 헐값에 중국으로 빠져나가는 현실, 대졸 일류급 프로그래머가 고작 우리나라 돈으로 1만 4,000원밖에 못받는 현실, 주민의 99%가 평생 우유 구경을 못하고 죽는 현실. 반대로 외국 주문제작품이 몰려들 정도로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애니메이션, 100% 비료와 농약을 쓰지 않는 무공해 야채, 일본 천황만 피웠다는 성천 담배잎 등이 모두 북한산이라는 사실은 또 누가 알까?

일본과 중국에 대해서는 식사습관서부터 문화유적, 놀이문화, 심지어 뒷골목 문화까지 꿰찬 우리. 그렇다. 이 책에서 사업 아이템을 찾는 것은 벤처기업가의 몫이고, 행간에 숨어있는 북한의 열악한 현실과 무궁한 잠재력을 읽는 것은 결국 일반 독자들의 몫이 아닐까?

Who?

●방영철

1968년 평양에서 태어났다.

나진해운대에서 6년동안 항해학을 전공한 뒤 중앙당 3대혁명 소조사업부에서 3년간 소조원으로 근무했다.

중앙당 38호실 29지도국(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외화자금 확보 및 관리 부서)에서 일하며 북한 물류시스템 전문가로 활동했다.

1997년 11월 15일 귀순, 서울정수기능대 전자기술학과에서 전자공학을 전공. 최근에는 북한 비즈니스 컨설팅 업체인 ‘평양컨설팅’을 설립했다.

김관명기자

kimkwm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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