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이 본 '김정일의 파격'‘공항 영접’ ‘승용차 동승’ ‘제1, 2차 정상회담 등에서 보여준 거림낌없고 자신에 찬 행동’등 북한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이 우리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을 맞는 과정에서 보여준 파격적인 예우와 행동이 앞으로 남북관계 전반의 실질적 발전으로 이어질 지가 관심이다.
국내 전문가들은 김위원장의 파격속에는 북한의 적극적인 정책변화를 상징하는 중요한 요소가 함축돼 있다는 데 대체로 의견을 같이한다.
김위원장이 14일 제2차 정상회담에서 “김대통령의 방문을 계기로 은둔생활에서 해방됐다”고 농담반 진담반의 얘기를 한 것은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여기에는 또 김위원장이 우리 남한 국민들에게 뿐만아니라 이 순간 한반도를 주목하고 있는 전세계인들에게 자신의 완전히 노출된 모습을 공개함으로써 극적인 이미지 반전을 노렸을 것이라는 해석이 뒤따른다.
다만 이러한 외형적인 변화의 모습들이 남북관계에서 어떤 내실을 가져올 수 있을 지에 대해선 조심스런 낙관론도 있으나 유보적인 평가도 함께 제기된다.
◇김정일위원장의 파격성등 행동변화에 대한 평가
외교안보연구원 윤덕민(尹德敏)교수는 김위원장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파격적인 예우와 일련의 행동에 대해 일단 “그만큼 남북대화에 신경을 쓰고 있다는 점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명지대 법정대 연하청(延河淸)교수도 “김위원장의 행동에서는 남북대화에 굳게 닫았던 빗장을 풀고 한반도 문제는 양쪽 당국이 해결해야 한다는 긍정적인 자세변화를 읽을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단국대 정용석(鄭鎔碩·북한학)교수는 “김위원장의 행동을 의외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동안 남북간 대치·불신의 세월이 길었음을 의미하는 측면도 있지만 어쨌든 우리 정부의 ‘햇볕정책’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위원장의 머릿속에는 남한만을 상대로 하는 것이 아닌 세계를 상대로 하는 구상이 있었을 것이라는 분석도 유력하게 제기됐다.
연하청교수는 이런 점에서 “김위원장의 행동은 국제사회에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각인시키는 의미를 갖는다”면서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그동안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불식시키고 ‘책임있는’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 자체로 김위원장의 변화는 북한과 국제사회와의 관계에서 큰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윤덕민교수는 “정상회담 일정을 하루 연기한 데 따른 부담을 걷어내고 남한 사람들 뿐 아니라 전 세계를 놀라게 하는 데 성공했다”는 시각을 보였다.
또 이런 점에서는 공항영접등 김위원장의 파격적 행동이 그의 독특한 성격에서 비롯된 측면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상당히 오래전부터 준비해 온 것이 현실로 구체화했다고 보는 견해도 적지 않았다.
통일연구원 김규륜(金圭倫)선임연구위원은 “김대중대통령에게 베풀어진 모든 의전과 예우를 김위원장이 혼자 단독으로 결정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면서 “그동안 남북한 사이에, 또 북한 내부에서 꾸준한 준비가 있었고 남북한 사이의 준비도 비선가동을 포함해 약 2년동안 준비했다고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국책연구기관의 북한문제 전문가는 “김위원장은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에 대미(對美), 대일(對日), 대중(對中)관계까지 포함하는 면밀한 계산을 했을 것”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북한출신으로 국내에서 북한문제 전문가로 활약하고 있는 이항구(李恒九)통일연구회회장은 김위원장에 대한 보다 흥미로운 해석을 내놓았다.
이회장은 “김일성주석은 상대적으로 과대평가됐고 김정일위원장은 과소평가된 측면이 있다”면서 “20,30대에 술과 영화에 탐닉했어도 30여년간 영도자수업을 받은 사람의 진면목을 보면 놀라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김위원장의 변화가 남북관계에 미칠 영향
그동안 남북간에 많은 준비가 있었고 김위원장의 변화가 아주 극적이라고 보는 관점에서 남북관계의 의미있는 진전을 점치는 전문가들이 많았다.
그러나 북한의 변화가 본질적인 것이냐에 있어선 적잖은 논란도 제기됐고 남북관계의 전체적인 전망에 대해서 유보적인 평가를 내리는 견해도 상당했다.
김규륜 선임연구위원은 “준비과정이 길었던 만큼 남북간에 내용적으로 의미있는 합의를 도출해 낼 수 있을 것”이라면서 “후속회담에 대한 합의가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것”이라고 말했다.
연하청 교수도 “이번 회담에서 경협부문은 일단 물꼬가 트일 것이고 정상회담을 비롯한 남북대화의 정례화 가능성도 커 그것만으로도 실타래를 푸는 긍정적인 의미가 있다”는 견해를 보였다.
정용석 교수는 그러나 “50여년간의 대결관계가 공항영접 제스처 정도로 해소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한뒤 “체제대립이나 체제보전에 따른 기본적인 갈등이 해소되기까지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윤덕민교수는 “김위원장으로서는 남측으로부터 경협지원을 받았다는 부분을 그대로 부각시키기 어려울 것”이라며 “따라서 통일방안등 대외적 명분을 취하려 할 가능성이 있고 이러한 명분집착이 향후 대화를 어렵게 만들 수도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항구회장은 “북한의 본질이 변했는지를 따져봐야 한다”면서 “적극적인 대외정책으로의 변화가 반드시 우리의 의도에 호응하는 것으로 속단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을 보였다.
고태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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