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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칼럼] 서울도 평양도 울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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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칼럼] 서울도 평양도 울고 있네

입력
2000.06.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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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 55년만에 열리는 남북정상 회담을 지켜보면서 많은 얼굴들을 생각하게 된다. TV가 중계하는 모든 역사적인 장면, 상상도 못했던 꿈같은 화면위로 그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 간다. 모두들 지금 울고 있는 걸까. 그들의 흐느낌이 내 가슴을 때린다.“남편이 전사한후 나는 시부모와 아이들의 생계를 도맡았다. 사발에 냉수 한그릇씩을 담아 아이들에게 주며 ‘오늘 점심은 물로 때우자. 저기 아버지가 우리를 보시잖니’라고 벽에 걸린 남편의 사진을 가리키는 날이 많았다. 애들은 모두 잘 자랐다. 이제 저세상에 가더라도 남편얼굴을 떳떳하게 볼수 있다”라고 말하던 한 전쟁미망인, 오래전에 나는 보훈대상을 받은 그를 인터뷰하여 기사를 썼다. 그는 오늘 어디서 TV를 보고 있을까.

한평생 사랑의 인술을 폈던 장기려박사의 얼굴도 떠오른다. 그가 세상을 떠나지 않았다면 이산가족 대표로 대통령일행과 함께 평양에 갈수도 있었을텐데… 북한의 가족들은 오늘 어떤 심정으로 김대통령을 맞이하고 있을까. 아내와 자녀들을 북에두고 온 그는 한평생 독신으로 가난한 환자들을 돌보며 살았다. “내가 남쪽에서 어려운 이들을 도우면 누군가 북쪽에서 내 아이들을 돌봐 줄것이라는 심정으로 무료진료를 시작했다”고 그는 말했다. 이산가족 상봉의 날을 손꼽아 기다리다가 그는 눈을 감았다.

내가 겪은 6·25, 그 참혹한 기억속에서 한 아이의 얼굴이 생각난다. ‘빨갱이’는 참 무서운 존재였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자 ‘빨갱이’들은 달아나고 그 가족들이 공포에 떨었다. 마을 청년들이 도망친 아버지를 내놓으라고 엄마를 닥달하는 동안 ‘빨갱이의 딸’인 작은 소녀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떨고 있었다. 마을 청년들은 엄마를 우물에 던져넣겠다고 협박하며 발길질하고 있었다. ‘빨갱이 가족’이란 멍에를 지고 힘겹게 살았던 그 모녀는 지금 어디서 남북정상회담을 지켜보고 있을까.

지난 92년 2월 남북고위급회담을 취재하러 평양에 갔을때 나를 안내하던 북한 여성의 얼굴도 스쳐 지나간다. 3박4일동안 우리는 매우 제한적인 대화를 나누었지만, 판문점에서 헤어질때 우리의 입에서 동시에 나온 말은 “통일이되면 꼭 만나자”란 말이었다. 그는 6·25때 고아가 되어 ‘어버이수령’의 보살핌으로 고아원에서 자랐다고 말했는데, 우리는 6·25를 겪은 동년배의 여성으로 체제를 뛰어넘는 그 어떤 느낌을 공유할수 있었다. 북한의 식량난이 전해질때 나는 그의 가족은 어떨까 생각한 적이 있다. 오늘 평양에서 김대중대통령을 환영하는 인파속에 그도 있었을까.

많은 사람들의 눈물과 많은 사람들의 기원속에서 남북의 정상이 만나고 있다. 온국민이 각기 자신이 처한 입장에 따라 만감이 교차하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분단으로 인한 상처가 깊을수록 눈물이 많고 기원도 간절할 것이다. 과거를 잊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나는 역사의 수레바퀴에 치었으나 이제 더이상 그런 희생이 있어서는 안된다, 화해와 평화의 역사를 만들어가야 한다 라고 기도하는 마음이 남북정상회담에 모아지고 있다.

김대통령도 만감이 교차할 것이다. 남북관계에 대한 앞선 주장으로 고초를 겪고 편견에 시달리면서 일관된 입장을 견지해 온 그는 55년의 냉전을 넘어 남북정상 회담을 이끌어낸 대통령이 되었다. 평양으로 떠나는 노대통령의 모습에서 역사의 섭리를 보게 된다. 누가 뭐래도 그는 첫 정상회담을 치룰만한 충분한 역정과 자격을 갖고 있다. 이런 역사의 섭리앞에서 그는 한없이 겸허해야 한다. 지지자들뿐 아니라 반대자들에게도 겸허해야 한다.

13일 하루 서울도 평양도 울었다. 우리의 역사가 너무나 험난했기 때문에, 동족상잔의 전쟁이 너무나 아팠기 때문에, 평화에 대한 갈망이 너무나 절실했기 때문에, 남북이 함께 눈물 흘렸다. 그 눈물은 더이상 역사의 후퇴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눈물이다. 정상회담의 성공을 비는 눈물이 풍년을 부르는 촉촉한 비처럼 서울과 평양을 적시고 있다.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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