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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카오스의 아이들](9) 아기업고 등교하는 美여고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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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카오스의 아이들](9) 아기업고 등교하는 美여고생들

입력
2000.06.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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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여성 임신 해마다 100만명 넘어학교측도 "졸업할 수 있는 기회줘야"

숙제를 해오지 않아 벌을 받는 여학생 12명 중 10대 미혼모(teenage mother)도 있었다. 올해 15세인 한 아이가 말했다. “난 아기를 갖고 싶어. 아이가 있으면 외롭지 않을 테니까.” 그 옆의 친구도 “나도 원해”라고 대꾸했다.

그러자 6개월 된 딸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벌을 받던 에스텔라 로자스(16)는 단호히 말했다. “아기를 갖지 마. 아기는 장난감이 아니야. 아이 키우기가 너무 어려워. 남자들은 언젠가 떠나. 나는 혼자 힘으로 살아가고 있어.”

LA지역에는 10대 엄마들이 다니는 학교가 있다. 대부분 남녀공학 학교 안에 별도로 설치되었으나 동쪽 교외에 위치한 라모나 고교는 여자만 다닌다.

이 학교는 재학중에 임신한 학생이 아기를 낳은 후에도 다시 공부할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다른 학교와 다르다.

학생 3분의 2가 중학교나 고등학교 때 아이를 낳은 엄마들인 이 학교의 공식 이름은 라모나 기회 고등학교(Ramona Opportunity High School)이다.

해마다 1백만명이 넘는 미국의 10대 여성들이 임신을 하고 있으며 이 중 5명 가운데 4명이 미혼모이다. 뉴스위크(1999년 5월 12일자) 보도에 따르면 15-19세 여성의 출산율이 90년대 들어와 16%나 감소했다고 한다.

그러나 10대 엄마들은 여전히 미국 사회의 문제이다. 신문들은 심심찮게 쓰레기통에서 죽은채 발견된 아기들을 다루면서 10대의 모성붕괴를 질타한다.

이 문제는 오늘날 성개방 풍조가 만연된 미국과 서구는 물론 한국과 일본에서도 예외없이 겪고 있는 공통된 고민거리이다.

라모나 고교는 LA통합지역구(231 South Alma Avenue)에 있다. 기자가 이 학교에 취재 요청을 했을 때 선선히 승낙해 놀랐다.

6월 1일 막상 학교에 가서 10대 엄마학생들을 만났을 때도 이들이 당당해서 놀랐다. 이들은 남자 친구가 떠났다거나 여전히 친구 사이라고 스스럼없이 말했고, 대부분 학교를 졸업한 뒤 대학에 진학해서 돈을 벌고 싶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학교 생활은 쉽지 않은 듯했다. 라모나 고교는 어느 공립학교보다 규율이 엄격하다. LA인근에선 자녀가 말썽을 부리면 라모나 학교에 집어넣는다고 부모들이 협박(?)할 정도이다.

이 학교는 1948년에 문제 있는 여자아이들 중에서 교육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졌다. 약 150명의 여학생을 15명의 교사들이 지도하는 이 학교는 해마다 800명이 입학하는데 대부분이 몇 달 안에 정규학교로 옮겨간다.

라모나 고교는 교복을 강요하지 않지만 두 가지 색깔의 옷만 허용한다. 청색과 흰색이다. 앞가슴이 파이거나 땡땡이 격자 줄무늬는 안되고, 영구화장이나 문신도 용납되지 않는다. 반바지나 미니스커트는 팔길이보다 길어야 하고 슬리퍼나 샌들도 못신는다.

책이나 폴더에 가족사진이나 아기사진도 끼워놓을 수 없다. 물론 남학생들도 얼씬 못한다. 수업규칙은 무섭기 짝이 없다. 수업시간에 1분 늦게 들어오면 30분간 처벌을 받는다. 벌칙을 제대로 안받으면 2배 혹은 5배씩 늘어나고 당장 부모나 보호자가 불려온다.

라모나 고교는 학생들의 아기들까지 맡아서 돌봐주고 있다. 그래서 부속 탁아소가 있다. LA시에서 50만달러(5억6,000만원)를 지원받아 지은 이 탁아소는 서울의 보통 유아원과 같은 모습이다.

다만 쉬는 시간에 여고생 엄마가 애들과 놀고, 임신중인 학생들이 찾아와 상담을 받는 것이 다를 뿐이다. 학교 수업중에는 보모들이 생후 1개월에서 36개월된 아기 22명을 돌보고 있다.

또한 라모나 고교는 퇴학당하거나 소년원에서 갓 풀려나온 여학생, 갱에 가담했다 손 씻으려는 학생도 20명이나 있는 재활학교이기도 하다. 종종 법 집행기관에 의해 강제로 입학하는 학생도 있다.

다양한 복지시설을 운영하는 라모나 고교는 재정이 부족하다. 최근에는 “방학중에도 탁아소를 운영하고, 아기용품이나 기저귀까지 지원해서 재활하려는 학생들을 전폭 돕자” 는 내용으로 2만달러 기금모금 공개 캠페인에 나섰다.

대통령부인 힐러리 클린턴과 멕시코계 유명복서 오스카 델 라 호야에게도 지원을 요청했다.

교감 바바라 해리슨은 “이 학교가 시나 주정부의 보조나 개인 기부금으로만 운영되기 때문에 운영이 어렵다. 정부나 미국연방보건 통계센터의 통계는 10대 출산율이 준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 그것은 생계보조금을 받는 15-18세의 통계이기 때문인데 조사 대상에서 제외된 12-13세에 아이를 낳는 경우가 늘고 있다” 고 말했다.

2살된 딸을 둔 바네사 가르샤는 “나는 남자애들이 없는 이 학교가 좋다. 남학생은 여학생을 망칠 수 있다”고 말했다. 올해 17세의 벌린 카스틸로는 인근 루즈벨트학교에서 왔다.

그는 이 학교에 와서 성적이 오르고 학교생활도 더 잘하게 됐다. “루즈벨트학교는 규모가 크고 복잡하다. 교사들은 학생에게 관심이 없다. 나는 모든 과목에서 낙제했다. 이 학교로 오기 전까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몰랐다”고 말했다.

7월 17일 두번째 아기를 낳게 될 린다 사보리(17)는 수학교사 데빗 에스파르자(28) 교사가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칭찬하는 학생이다.

올해 27살인 그녀의 남편은 짐꾼이다. 에스파르자교사는 “10대 엄마들이 보통 학생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고 수업태도도 진지하다. 임신모가 있어서 수업에 지장을 받지는 않는다 ”고 전했다.

쉐리 브레스킨 교장은 ”학생들은 학교를 졸업해서 좋은 직업을 가지려고 한다. 이들에게 고교를 졸업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줘야한다.

학교발전 기금을 모아 재정을 튼튼히 해서 말썽꾸러기를 수용하거나 격리하는 차원이 아닌 좋은 교육을 통해 인격과 능력을 갖춘 여성으로 길러 사회에 내보내겠다”고 말했다.

캘리포니아(UCLA)대 크리스틴 루커(법학)교수는 그의 저서 ’모호한 개념’(Dubious Conceptions: 하버드대 출판부)에서 “10대의 임신은 가정의 굴레를 거부하지만 아이는 원하는 가치관의 변화에도 원인이 있다.

현재 미국의 미혼모 비율은 30%에 달하며 10대 여성도 나이만 어릴뿐 이런 흐름과 무관치 않다” 고 지적했다. 그는 10대 엄마를 줄여나가는 방법으로 ‘미래를 향한 꿈'을 심어주자고 제안하고 있다. 여대생과 전문직 여성은 10대 나이에 좀 더 가치있는 활동을 하고 싶다는 믿음을 가졌었다는 것이다.

/로스앤젤레스=최성자 논설위원 sjchoi@hk.co.kr

■ 전문가기고

성.피임지식.인간존엄성 가르쳐야 10대 미혼모 줄여

필자가 미국에서 공부하던 1980년대에 10대 청소년의 무차별 성관계, 원치않는 임신, 미혼모, 그리고 외부모 가정이 커다란 사회 문제였다.

그땐 우리와 문화가 다른 나라의 문제라고 여기고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20여년이 지난 지금 필자는 다양한 인간의 문제와 부적응을 치료하는 일을 하고 있다. 전에 남의 이야기로 여겼던 문제들이 고스란히 재연되는 참담함을 만끽하면서---.

며칠 전 갑자기 노란머리 친구를 의지하고 무거운 가방을 맨 고3 여학생이 방문을 두들겼다. 너무 급해 상담원에 와서 아무선생님 방이나 노크를 한다며 자신이 위험에 처해 있으니 무조건 도와 달라고 하였다.

심상치 않은 일이라 느끼면서 어떤 도움이 필요하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3일전 아는 오빠와 원치 않는 관계를 가졌는데 그때가 배란일이어서 임신했을지도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72시간 이전에 먹으면 착상을 안되는 약이 있으니 그 약을 먹도록 주선해 달라고 애원했다.

엄마에게 이 사실을 알렸느냐고 묻자 차마 말하지 못했다고 하였다. 얼핏 따지니 그 때 바로 67시간이 지났다. 자초지종을 들을 새도 없이 가족계획협회에 전화를 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운영하는 모자보건센터와 연결해서 원하는 대로 해주었다.

그때 신속한 서비스를 받아서 위기는 모면할 수 있었다. 그 후 여학생은 달걸이도 하였고, 지금은 재미있게 생활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무 거리낌도 없이.

자신의 하룻밤 불장난이 무사히 지나간 것에 대해 환성이라도 지르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내 마음은 얼마나 착잡했는지 모른다. 그 동안 우리가 적극 펼친 성교육의 결과로 아이들은 성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다. 그렇지만 생명의 소중함에 대한 의미는 잘 가르치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보건복지부의 통계에 의하면 현재 미혼모 시설에 입소한 10대는 전체입소자의 약 59%가 된다. 이 중 성이나 피임 지식이 없거나 관심이 없는 경우가 40% 정도였다.

임신사실을 안 시기도 3-4개월째라는 비율이 약 50%에 이르고 있다. 이를 감안하면 10대 미혼모의 문제는 철저한 성교육을 통해서 어느 정도 예방될 수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성교육은 단순한 지식이나 정보 제공을 넘어선, 인간의 존엄성에 가르치는 교육이어야 한다. 10대 미혼모의 해결은 궁극적으로 사전 예방이 최선책이며, 이를 위해 무엇보다 혼이 깃든 성교육이 시급하다.

박경애

공동기획:한국일보 한국청소년상담원 후원:삼성언론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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