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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민족통합 역사를 새로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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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민족통합 역사를 새로 쓰자

입력
2000.06.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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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우리민족사를 새로 쓰는 날의 시작이어야 할 것 같다. 분단사에 한 획점을 찍고 민족통합의 역사를 새로 써 나가는 계기로 믿고 싶은 날이다. 오늘 분단 55년만에 남쪽 대통령이 탄 비행기를 위해 북쪽하늘이 활짝 열렸다. 남쪽 대통령이 처음으로 북쪽땅을 찾아가는 날은 날씨도 쾌청했다. 두 정상의 역사적인 만남을 날씨 마저도 축하하는 듯 하다.이렇게 비행기로 1시간여면 족한 지척의 거리요, 끊어진 육로나 철로를 잇는다고 해도 불과 몇시간이면 찾을 수 있는 내 땅, 내 고향이다. 우리는 너무나도 당연한 이 나들이를 성사시키는데 무려 55년이라는 세월을 허송해야 만했다. 그 가운데는 전쟁사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참혹했던 민족상잔의 기간도 있었다. 한집 건너에 전화(戰禍)의 직접적 피해 가족이요, 한집 건너는 혈육과 떨어져 단장(斷腸)의 세월을 살아가는 이산가족이 있다.

남쪽 대통령으로는 최초로 김대중대통령이 찾은 13일 오전의 평양은 더이상 폐쇄사회의 고도(孤都)가 아니었다. 인간이 자유스럽게 살아 숨쉬는 여느 다른 도시나 다름없었다. 남쪽 대통령을 맞는 평양공항은 적어도 외견상으로는 동포애가 넘쳤고 김 대통령을 진정으로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김정일 노동당 총서기 겸 국방위원장의 공항마중은 예상밖의 일이었다. 고령의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이 방북했을 때는 숙소를 찾아온 적이 있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의 공항영접은 이례적임엔 틀림없다. 우리는 김 위원장의 공항영접이 자신보다도 20여세 많은 김 대통령에 대한 예의표시라 믿고 싶다. 남녘이나 북녘 모두가 어른을 공경하는 풍습은 마찬가지다. 오죽했으면 우리나라를 예부터 동방예의지국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우리속담에 ‘시작이 반’이라는 얘기가 있다. 남과 북의 이같은 산뜻한 출발은 민족문제 해결의 밝은 신호로 받아들여도 무방할 듯 싶다. 역지사지하면 같은 민족간에 무슨 문제인들 합의못할 일이 있겠는가. 남녘 북녘 할 것없이 ‘좋은 출발’에 거는 기대가 그래서 남다르리라고 본다.

세계는 지금 7,000만 우리민족의 일거수 일투족을 주시하고 있다. 과연 남북한이 반세기 분단의 벽을 뛰어넘어 민족적 에너지를 결집할 수 있을 것인가. 또 한민족 스스로 갈등의 불씨를 제거하고 평화를 정착시킬 수 있을 것인가 등이 세계인의 관심사다. 더러는 우려와 질시의 눈으로, 더러는 냉소적 자세로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고 있는 듯 하다.

우리는 지난 세기초 주변열강의 이해다툼속에서도 자의식을 찾지 못해 엄청난 시련을 겪어야 만했다. 100년전의 과오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남과 북 모두 이번에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것이다. 역사는 늘 깨어있는 자에게만 충만한 복을 안기는 법이다.

김 대통령은 출발에 앞선 ‘대국민인사’에서 남북 정상이 만난다는 그 자체가 큰 의미가 있다고 했다. 옳은 지적이다. 우리는 반세기 동안을 상이한 이념과 체제, 그리고 대결구도속에서 살아왔다. 남과 북이 첫 만남부터 무슨 가시적 성과를 낼 것으로 기대하는 일이야 말로 터무니 없는 과욕이다. 서로 만나 하고 싶은 얘기를 가슴터놓고 하는 가운데 오해도 풀리고 또 서로 상대의 생각도 알게 되리라 본다.

북한의 김 위원장에게 바란다. 더이상 폐쇄의 장벽을 고집하지 말고 개혁과 개방의 길로 나오기를 충심으로 희망한다. 제 백성을 먹이지 못해 굶어죽게 하는 체제는 더 이상 존립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인민의 배고픔을 해결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라고 본다. 이 문제는 지도자의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해결책의 마련이 가능하리라 본다.

그것은 바로 남측의 지원의사를 액면 그대로 믿고 받아 들이는 길이다. 북녘 동포의 아픔을 내 아픔처럼 같이 나눌 사람은 남녘 동포밖에 더 있겠는가. 진정으로 북한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은 남녘의 같은 민족밖에 없다. 그래야만 세계도 북한을 돕게 될 것이다. 불필요한 의심을 거두어야 한다. 그리고 불필요한 과장이나 허세도 버려야 한다.

남북 양측은 이번 정상회담으로 일거에 많은 일을 이루려는 욕심을 갖지 않아야 한다. 의견일치를 하기 쉬운 것 부터 단계적으로 처리해 나가다 보면 효과적으로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 본다. 이번 평양 정상회담에서 합의를 보지 못한 부분은 다음 서울회담으로 넘기거나 남북의 책임있는 당국자에게 계속 논의토록 하면 될 것이다.

우리는 남북문제의 가장 핵심적 관건이 상호신뢰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김 대통령의 평양방문은 막혔던 최고위급 회담의 물꼬를 텄다는데 의미가 있다. 다음엔 김 총서기가 서울을 답방할 차례다. 두 정상의 상호방문이 정례화하고 또 두 정상간의 합의사항이 실무적으로 뒷받침될 때 남북관계는 비로소 항구적 평화체제의 정착단계에 이르게 된다. 평화정착의 단계에서 더욱 상호신뢰가 쌓이다 보면 통일의 날도 그렇게 먼 훗날의 일은 아니라고 본다.

오늘아침 김 대통령 환송인파 가운데는 반세기전 헤어진 가족의 빛바랜 사진을 들고 나와 눈물짓는 고령의 이산가족이 있었다. 이처럼 죽어가는 고령의 이산가족들에게 평양 정상회담은 한줄기 희망의 빛이어야 한다.

동시에 평양회담은 7,000만 민족의 화해와 평화의 길을 닦는 출발점이어야 한다. 한반도에서 동족상잔의 전쟁위협을 영원히 제거하는 회담의 시작이어야 한다는 점도 아울러 지적해 두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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