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대통령이 오늘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을 위해 평양땅을 밟는다. 정상간의 만남은 다른나라 사람들의 의지와 손에 의해 국토가 양분된 지 55년만에 처음이다. 반세기를 넘긴 이땅의 분단사는 우리 민족 모두에게 단장(斷腸)의 세월을 의미한다. 김 대통령의 2박3일 평양체류에 거는 기대는 그래서 각별하다. 정상회담이 불신과 대립, 갈등과 반목의 역사 청산은 물론 화해와 협력, 평화공존의 시대로 나아가는 첫 걸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지금 세계인의 눈과 귀는 온통 한반도에 쏠려있다. 지구상 최후의 냉전지대인 한반도에 해빙의 훈풍이 불 것인지 주의깊게 지켜보고 있다. 특히 주변 4강의 외교적 각축은 구한말(舊韓末)상황을 연상케 할 정도로 치열하다. 자주적으로 싹틔운 화해의 물줄기가 곧게 뻗어갈 수 있도록 남과 북이 서로 역지사지하는 지혜를 발휘할 때라고 본다.
당초의 예정대로였다면 김 대통령은 어제 떠났어야 한다. 하지만 까닭모를 사정으로 하루 순연됐다. 남북문제는 늘 이처럼 상식과 예상을 뛰어넘는 이변의 연속임을 절감하게 된다. 우여곡절끝에 마주앉은 두 정상이 민족문제의 돌파구를 열어주기 바라는 국민적 열망은 결코 지나친 것이 아니다.
비록 의제는 구체화하지 않았으나 비관할 일은 못된다. 민족문제를 거론하는 마당에 두 지도자가 마음을 열지 못할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김 대통령도 이미 밝힌 바 있지만 두 정상이 만난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는 각별하다. 주요현안에 대한 시각차가 적지 않지만 두 지도자가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눈다면 분명히 현실적인 접점도 찾아지리라는 것이 우리 생각이다.
현재 한반도를 감싼 기류는 몹시 소용돌이치고 있다. 정상회담 개최의 자주적인 결정이 요동을 촉진한 듯한 분위기다. 서울_도쿄_워싱턴을 잇는 한 축에, 평양-베이징-모스크바를 잇는 대응 축이 마련되는 형국이다. 마치 냉전체제하의 블록구도를 연상시킨다. 그런 가운데서도 남북간 화해 가능성에 대비한 듯한 이들의 움직임은 국제정치의 비정함마저 느끼게 한다.
주변 열강의 복잡하게 얽힌 이해를 뛰어넘는 길은 한반도 내부에서 먼저 컨센서스를 이뤄내는 일이다. 이를 위해 두 정상이 어렵게 자리를 함께 한 것으로 우리는 이해한다. 지금 남과 북은 ‘한반도문제의 한반도화’를 위한 첫 걸음마를 시작했다. 그러나 언제 어느 쪽으로부터 견제나 딴죽이 걸릴지 모르는 상황이다. 두 정상이 민족의 장래를 내다보는 긴 안목으로 ‘통 큰’결과를 내놓아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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