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정책이 표류하고 있다. ‘원칙론’보다는 ‘상황논리’가 압도하고 ‘대증요법’이 구사되면서, 기존 정책방향이 180도 뒤집어지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금융당국은 ‘시장안정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항변하고 있지만, ‘귀에 걸면 귀고리, 코에 걸면 코걸이’식 정책이 오히려 시장규율을 깨뜨리고, 정책불신만 증폭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예금보험료율
지난해까지 예금보험료에 대한 정부입장은 ‘금융권별, 금융기관별 차등화’였다. 위험도와 요금이 비례하는 기본적 보험가격원칙을 도입, 우량금융기관은 적은 보험료를, 불량금융기관은 많은 보험료를 내도록 함으로써 금융기관의 옥석이 가려지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재경부는 그러나 보험료차등화 계획을 백지화, 전 금융기관 보험료를 100% 일괄인상하는 안을 12일 입법예고했다.
재경부는 “보험료를 차등화하면 높은 보험료를 내는 금융기관은 뱅크런(대량 예금인출)이 빚어져 존립위기를 맞을 수 있어 실익이 없다”고 말했다. 결국 반년전이나 지금이나 시장상황은 별로 달라진게 없는데도 정책방향은 우량-비우량의 차별화에서 획일적 평준화쪽으로 완전히 뒤집어졌다.
▦대우 담보CP
지난해 대우가 도산위기를 맞자, 금융기관들은 ‘당국의 종용’에 따라 대우자산을 담보로 4조원의 CP를 매입(자금지원)했지만 대우가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에 회부되면서 모두 부실채권으로 전락했다.
1년 가까이 지난 지금 자산관리공사는 대우 담보CP를 80-90% 가격으로 할인매입한다는 안을 제시했다.
한 투신사 관계자는 “당국의 종용만 없었으면 당시 대우에 자금을 줄 금융기관은 거의 없었을 것”이라며 “이제와서 할인매입으로 부실을 금융기관들에 떠넘기는 것이 말이나 되느냐”고 말했다. 오직 금융당국만 책임을 지지않는 ‘신(新)관치’의 전형적 사례로 꼽힌다.
▦은행소유구조
재경부는 약 한달전 ‘상법상 은행 동일인지분한도 철폐’계획을 내놓았다. “법으로 은행 소유한도를 묶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는 만큼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며, 우선 금융지주회사법부터 고치고 나아가 은행법까지 개정하겠다”는 방침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그러나 고작 한달이 지난 지금, 금융지주회사법은 종전대로 4% 은행소유한도가 유지되는 쪽으로 되돌아섰다.
▦연계콜
금융기관이 타 금융기관을 끼고 대우에 자금을 지원했던 1조원의 연계콜자금의 대지급문제는 현재 예금보험공사와 해당금융기관간 법적 분쟁에 휘말려있다. 그러나 정부는 변칙적 연계콜 문제의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은 뒤로 미룬 채 서로 적당히 손실을 나누는 ‘타협안’을 모색중이다.
이성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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