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 임진각 실향민 표정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이틀 앞둔 11일 경기 파주시 임진각 통일전망대 등 ‘망향의 장소’에는 평소 휴일의 2-3배에 달하는 내방객들이 몰려 회담에 대한 간절한 기대감을 내보였다.
서울시내 유명 냉면집 등 ‘단골 집결지’에 모여든 실향민들은 회담의 하루 연기 소식에 “무슨 속사정이 있는 것이냐”며 불안감을 내비치면서도 저마다 ‘귀향의 꿈’을 펼쳐보이느라 시간가는 줄 몰랐다.
◇ 임진각
이날 임진각에는 1만여명이 몰려 망배단, 평화의 종각, 자유의다리 등을 둘러보며 회담의 성공을 기원했다. 이 바람에 넓지 않은 광장이 하루종일 인파와 차량으로 꽉 메워졌으며 명절이 아닌 날로는 이례적으로 주변 도로마다 교통정체가 빚어졌다.
임진각에서 28년째 사진사일을 하는 정성춘(鄭成春·55)씨는 “아침 일찍부터 사람들이 들어차 오랜만에 뵙는 실향민 어른들께 인사하느라 정신이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몸이 불편해 3년만에 이 곳을 찾았다는 함남 함흥 출신 박재헌(朴在憲·71)씨는 “이미 눈을 감은 숱한 실향민이 더이상 가지 못하고 이 곳에 뼈를 뿌렸다”고 말해 주위를 숙연케 했다.
시민들은 갑작스런 정상회담 연기 결정에 대해 뜻밖에 차분한 반응을 보였다. 전남 광주에서 노친을 모시고 올라왔다는 오행록(吳幸錄·48)씨는 “남북관계에서 돌발상황은 언제든 있을 수 있는 것 아니냐”며 “전반적인 분위기만 좋다면 하루 이틀쯤이야 상관없다”고 말했다.
◇ 통일전망대
오두산 통일전망대의 풍경도 다르지 않았다. 북에서 돌아가셨을 어머니의 생신을 맞아 망배단에서 제사를 드린 황해도 출신 김정수(金定守·70)씨는 “6·25 때 유격대로 활동하다 1·4후퇴 때 단신 월남했다”며 “이곳에서 3년째 제사를 지내고 있지만 이번이 남쪽에서의 마지막 제사가 되길 간곡히 바라고 있다”고 눈시울을 적셨다.
전망실 안내원 정인희(鄭仁喜·23·여)씨는 “북측의 대남 비방방송이 최근에는 거의 들리지 않고 평온한 음악방송으로 대체됐고 ‘미군 나가라’는 북측 선전간판도 ‘동족상쟁 반대’로 바뀌었다”고 전했다.
이 곳에서는 정상회담을 맞아 1층 로비에서 전시중인 북한의 천재소녀 화가 오은별(20)양의 병아리 수묵화 등 27점의 작품이 큰 인기를 모았다. 광주에서 단체견학 온 윤 송(13·금당초등6)군은 “정상회담으로 통일이 되면 오은별 누나를 직접 만나 그림을 배우겠다”는 희망을 펼쳐보이기도 했다.
◇ 실향민 식당
서울 오장동냉면집, 평양·필동·만포면옥 등 실향민들이 늘 모이는 ‘고향음식점’들도 이날은 기다리는 줄이 훨씬 길었다.
평남 순천 태생으로 만포면옥을 찾은 오희선(吳希善·68)씨는 “‘며칠만에 오겠다’며 고향을 떠난 뒤 반세기를 갈라져 살았다”며 “최소한 2002년 월드컵 때는 가족들을 만날 수 있도록 가시적 성과가 나오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가족들과 함께 오장동냉면집을 찾은 함남 출신 고용수(高容水·80)할머니는 “북에 남았던 친정부모와 오빠들 모두 돌아가셨겠지만 내가 태어난 집터라도 보고 죽는 것이 마지막 소원”이라며 눈시울을 붉혔고, 젖먹이 여동생을 북에 두고 홀로 임진강을 헤엄쳐 건넜다는 김상백(金相百·75)씨는 “생사만이라도 확인할 수있도록 합의해주길 간절히 바란다”며 목이 메었다.
3대째 평양면옥을 꾸려온 김대성(金大成·56)씨는 “할아버지가 평양 대동문 옆에 처음 세우셨던 대동면옥을 부활시키겠다”는 희망에 부풀었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정상원기자
orn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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