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오늘도 '신화'를 쓴다어깨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 옅은 카키색 셔츠에 청바지, 그리고 파란색 캐주얼화를 신은 마흔 둘의 박경덕.
그가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한번쯤 들었을 MBC 라디오 ‘싱글벙글쇼’(진행 강석, 김혜영) 작가이다.
방송가의 전설로 불리우는 그는 신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
시청률과 청취률에 따라 급변하는 방송환경 속에서 박경덕은 14년째 한 프로그램의 작가로 활동하고 있으니 그럴 법도 하다. 그것도 고졸 출신으로 숨막히는 생방송 프로그램을 대본을 쓰고 있다.
낮 12시 25분. 방송이 시작되는 순간에도 7층 스튜디오에서는 박경덕의 손놀림이 바쁘다. 방송도중에 쓰는 원고를 스튜디오 부스로 연속 집어 넣는다. “등에 칼을 꼽고 작업을 하는 것 같다.
14년동안 대본을 못 쓴 날은 갈비뼈가 부러져 예고 방송한 단 하루 뿐이다.”
그가 지금까지 쓴 ‘싱글벙글쇼’원고량은 엄청나다.
200자 원고지 24만6,300여장. 그런데도 제작진은 그를 라디오 작가로만 두지 않는다. 1986년 MBC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에서 지금의 ‘전파 견문록’에 이르기까지 1, 2개의 텔레비전 오락 프로그램 대본까지 쓰게 했다.
그를 방송 작가로 이끈 것은 ‘이악락인(以樂樂人·음악으로써 사람들을 즐겁게 한다)’이라는‘예기’에 나오는 글귀였다.
“중학교부터 음악을 너무 좋아해 통기타를 배웠다. 첫 직업이 역시 뮤직 라이프라는 잡지 기자였다. 1983년 MBC PD가 음악 특집 프로그램 구성을 제의해 방송과 첫 인연을 맺었다.”
그는 이제 ‘이서락인(以書樂人·글로써 사람들을 즐겁게 한다)’을 하고 있다.
‘싱글벙글쇼’에서 신선하면서도 인기가 높은 코너인 ‘돌도사’‘신혼일기’ ‘놀자와 21세기’ 등이 박경덕의 빛나는 아이디어로 탄생했다.
‘싱글벙글쇼’는 노태우·김영삼정권때 유일하게 서민편에 서서 하고 싶은 말을 다했던 열린 언로(言路)구실을 했다.
“라디오로 세상 소식을 접할 수밖에 없는 서민들에게 정직하고 싶어 기관 등에서 항의해도 무시하고 글을 썼다.”
“신문과 인터넷은 아이디어와 글쓰는 재료의 보고(寶庫)” 라고 자신있게 말하는 박경덕만큼 신문과 인텃넷을 많이 보는 사람은 없다.
14개의 신문을 정기구독한다. 그날 그날 뉴스를 점검하고 참고할 것을 메모해 대본에 이용한다.
자신을 돌아보고 고정 관념을 깨야한다는 것이 그의 방송작가관. 작가는 ‘사랑하면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 때 보이는 것이 전과 같지 않더라’라는 성현의 말을 늘 새겨야한다는 것이다.
그는 일을 즐기면서 하는 스타일이다. 일을 사랑해야 아이디어나 열정이 생긴다고 했다. “스트레스가 안 생긴다는 말은 거짓이다.
그날로 수영과 요가로 근육을 풀고 스트레스도 해소한다.”며 인터뷰 도중 벌떡 일어나 스트레칭을 해보였다.
사회에 첫발을 디디면서 열정으로 가득찼던 스물세 살로 영원히 남고 싶다는 박경덕. 작가 일 외에 서강대 방송아카데미 경희대 등 5군데에서 구성작가론을 강의하는 등 하루를 정신없이 보낸다.
“하루 24시간은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그러나 사람에 따라 그 시간을 채우는 내용물은 전혀 다르다.”강의하러 떠나면서 그가 하는 말. “택시를 탈 때 ‘싱글벙글쇼’작가라고 하면 너무 좋아하는 모습들을 보면 작가로서 행복하다.
그 행복을 서민들이 계속 느끼도록 늘 최선을 다하겠다.”
◇약력
▲1958년 서울출생 ▲1977년 양정고 졸업, 1979년 청주대 국문과 2년 중퇴 ▲MBC라디오 ‘음악캠프’ ‘가요올림픽’(1985년), MBC TV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 (1986년) ‘화요일에 만나요’‘음악이 있는 곳에’ (1992년) ‘이야기쇼 만남’ (1994년) ‘전파 견문록’(2000년), KBS 1TV ‘사랑의 리퀘스트’ (1998년·한국방송대상 작가상) ▲1986년- 현재까지 MBC라디오‘싱글 벙글쇼’(MBC연기대상 작가상)
배국남기자
knb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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