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민련의 김종필 명예총재(JP)만큼 레토릭이 풍부한 정치인은 드물다. 현란한 수사(修辭) 못지 않게 평생을 이어온 제2인자적 처세 또한 그만큼 통달한 사람도 많지 않다. 유명한 ‘자의반(自意半)타의반(他意半)외유’ 귀국때의 “유럽보다는 미국이, 미국보다는 아시아가 더 넓으며, 한국을 지배할 나라도, 한국이 지배할 나라도 없다”고 했을 때 열광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현란한 정치적 수사와 함께 ‘대통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그의 2인자 철학은 ‘정치인 JP’의 상징이나 다름없다.■정치적 격변의 고비고비마다 알 듯 말 듯한 특유의 선문답으로 국면을 헤쳐나가는 그의 탁월한 처세술은 제갈량인들 당해 낼 재주가 있을까. 그런 그도 작금의 시련앞에서는 속수무책인 듯하다. 총선패배 충격은 너무나 크고 깊다. 50석이 넘었던 의석이 교섭단체도 구성하지 못하는 17석에 불과하다. 그의 독백처럼 누군들 이런 참담한 결과를 예상이나 했겠는가.
■일부의 명예로운 은퇴종용에도 그의 재기의욕은 강하다. 엊그제 충청권 재보선에서 거둔 기초단체장 두 곳 승리도 그에게는 큰 위안이다. 자민련의 교섭단체 구성 등 아직도 ‘잠들기전 가야 할 몇 마일’에 강한 미련을 두고 있다. 하지만 사정은 녹록지 않다. 우선 교섭단체 구성 완화에 대해 여론이 얼음장 같다. 의장단 선출 때처럼 DJP공조가 다시 이뤄지면 승산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한나라당의 입장불변이 암초다.
■주변여건도 안좋긴 마찬가지다. 그때 그때 상황에 맞도록 번뜩이는 지혜와 촌철살인의 문장을 지어 바쳤던 송업교도 없다. 한 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던 복심(腹心) 김용환도 그의 곁을 떠난 지 오래다. 오히려 총선 땐 서로를 ‘배신자’라며 삿대질까지 했다. 사면초가에 몰린 그의 재기여부는 세인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부도옹(不倒翁) JP’신화는 계속될 것인가, 그것이 궁금하다.
/노진환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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