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회담 계기 남북 DB공유 가능성서울 종로구 구기동 이북5도청 4층의 컴퓨터교육장. 60,70대 노인 20여명이 희끗한 머리카락을 연신 쓸어올리며 인터넷 삼매경에 빠져있다. 마우스 조작이 쉽지 않은 듯 커서는 제자리를 찾지 못하지만 열의만큼은 N세대 못지않다.
이들이 하루 3시간씩 3일 교육이라는 강행군을 마다않고 인터넷을 배우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북한에 가족을 두고 온 노인들에게 인터넷은 가족의 생사와 상봉여부를 확인해주는 믿음의 매체이다. 통일부와 이북5도위원회 등 여러 기관에서 남쪽 이산가족의 온라인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하고 있어 북쪽이 성의만 보인다면 인터넷을 통한 생사확인과 상봉주선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TV가 독일통일의 숨은 주역이었다면 남북통일은 인터넷이 앞당길 수 있다”는 인터넷 벤처기업인들의 주장이 현실로 다가오는 듯한 현장이다.
벌써 1,000명 가까운 수강생을 배출한 이북5도위원회는 40만명에 이르는 이산가족의 신상정보와 연락처 등을 담은 DB를 확보하고 있다.
두고온 북녘가족을 찾는 애타는 사연과 함께. 고향을 떠나온지 50년이 넘었다는 이호씨는 게시판에 “푸르름이 무르익는 계절이 되면 문득 고향마을의 꽃내음이 스쳐지나가는 것 같아 그리움이 더욱 사무친다”며 “이산의 아픔을 달래고 고향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홈페이지가 돼달라”고 주문하고 있다.
이북5도위 김현욱총무과장은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조선인포뱅크 등 북한측 사이트와 협력이 가능해진다면 당장이라도 남북한의 DB 공유가 가능하다. 그 다음 단계로 생사확인과 상봉주선도 어렵지 않게 진행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통일부와 이북도민중앙협의회, 그리고 민간기업들도 DB 구축에 나서고 있다. 북한 가족의 생사확인과 송금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는 유니온커뮤니티(대표 정영철)는 홈페이지(www.unionzone.com)를 통해 회원을 모집하고 있다.
정사장은 “지금도 남쪽의 인터넷 데이터를 베이징 등을 통해 북한에 보내 북쪽 가족의 생사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며 “90일 이내에 확인이 가능하도록 북한측과 협의가 돼있다”고 말했다.
현재 회원은 2,000여명. 국가정보원 간부 출신인 정사장은 “그동안 음성적으로 시행되던 북한과의 교류가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양성화하고 있다”며 “인터넷이 아니었다면 이러한 사업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라고 소개했다.
KBS와 함께 이산가족 3만명의 DB를 작성한 이북도민중앙협의회는 정상회담 분위기에 맞춰 북한측 파트너와 자료 교환을 추진하고 있다. 한민족 해외인터넷방송인 한터넷(www.hanter.net)은 양쪽 이산가족이 보내온 사진과 인적사항을 인터넷에 소개하고 있다.
인터넷을 이용한 이산가족 사이트는 대부분 컴퓨터에 익숙지 않은 노년층을 위해 e-메일 등 온라인과 전화·직접방문 등 오프라인 모두를 통해 접수를 받고 있다.
이북5도위원회 홈페이지(www.ibuk5do.go.kr)에서 신청서를 다운로드 받아 작성한뒤 제출하거나 전화(02-2287-2525)를 통해 신청 방법을 문의할 수 있다.
민간 기업에서 운영하는 사이트도 대부분 오프라인 접수를 병행한다. 인터넷 이용자는 유니온커뮤니티나 인터넷이산가족찾기(www.who119.co.kr) 사이트 등을 통해 e-메일로 접수하면 된다. 전화를 이용하려면 각각 (02)3446-7546이나 (02)786-0119로 신청할 수 있고 직접 방문 신청도 가능하다.
이산가족 상봉이라는 인도적인 분야 외에도 인터넷은 통일의 전단계인 남북교류의 실용적 수단으로도 쓰이고 있다. 북한 상품 전용 쇼핑몰이 급증하고 일부 사이트는 남한 기업의 북한 임가공 업무를 주선하고 있다.
게임 서비스 사이트인 조이포유(www.joy4you.com)가 남북 인터넷바둑대회를 준비하는 등 문화교류도 인터넷 상에서 더 활발하다.
14개 인터넷 기업이 이달말‘북한인터넷벤처협의회’를 구성하기로 합의하는 등 관련 업계도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협의회를 주도하고 있는 유세형 ㈜조선인터넷(www.dprk.com)사장은 “200억원 규모의 북한 관련 인터넷 벤처펀드를 조성해 북한 진출 업체를 지원할 것”이라며 “우선 인터넷 이벤트를 통해 우리 국민의 관심을 모은 다음 관광, 무역 등 북한과의 협조가 가능한 사이트를 공동 구축하겠다”며 단계적인 사업계획을 밝혔다.
이상연기자
kubri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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