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미스 하버드大교수우리나라에 ‘협상학’이라는 분야가 있었다면 우리측이 쌍끌이 어로문제를 누락시켰던 지난해 한일어협협상은 어떻게 됐을까. 1985년부터 이 분야를 개척, 세계적 대가로 불리는 데이비드 스미스(65) 미 하바드대 로스쿨 부학장은 “한국 공무원들이 6개월만 교육을 받았다면 그런 실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서울대 국제지역원(원장 조동성·趙東成) 초정강연을 위해 8일 방한한 스미스 부학장은 “미국에선 형사사건에조차 협상과 중재가 중시되는 추세”라며 “이젠 어떤 분야건 이에 대한 체계적 연구가 없으면 살아남기 어려운 시대”라고 강조했다.
태국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의 정부고문이기도 한 그는 한국에도 인맥이 많다. 이종남(李種南)전법무장관, 송상현(宋相現)서울대 법대교수, 김영무(金永珷) 김&장 법률사무소 대표 등이 제자들이다.
-협상학은 우리나라에선 아직 생소한데.
“하바드대 로스쿨에서 15년전 처음 연구를 시작한 새로운 분야이지만 그 중요성은 엄청나게 커지고 있다. 미국의 경우 민·형사 사건을 막론하고 80~90%가 변호사간, 변호사와 검사간 협상에 의해 해결된다.
일도양단식의 재판부 판결로는 쌍방이 책임을 분점하고 있는 복잡다기한 사건을 합리적으로 처리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이는 엄청난 소송비용을 절약하는 효과도 있다. 협상학은 바로 이런 현실적 필요에 의해 출발했다. 한국에는 협상 관행이 정착되지 않아 판사들의 업무량이 너무 많다는 얘기를 들었다”
-법적 문제이외 다른 분야에 대한 연구는.
“기업 합병이나 정당간 정치협상과 국가간 협상에선 더더욱 협상기술의 비중이 커진다. 연구영역이 넓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이를 통해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협상 당사자가 함께 성과물을 얻을 수 있는 창조적 가치를 모색하는 것이 근본 목표다. 아직 미국외에는 협상학이 독립적 학문으로 자리잡은 나라는 없지만 보편화는 시간문제라고 본다”
-그동안 한국의 협상 행태를 어떻게 평가하나.
“내가 정부고문으로 있는 동남아 국가에 합작투자를 할 때 한국측은 상황을 너무 낙관적으로 보고 닥쳐올 문제점에 대한 스터디와 협상을 도외시하는 경향이 있다. 기술이전 갈등이나 당국자의 뒷돈 요구, 파트너의 재투자 거부 등을 내다보지 못해 나중에 낭패를 본다. 미리 상대국 정부와 이런 문제점들에 대해 협상하고, 실제 상황이 닥쳤을 때 타협할 수 있는 협상 프로그램을 만들어 놓는 것이 중요하다”
-다음주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한마디 조언한다면.
“어떤 회담이든 나의 목표는 무엇이고, 상대방은 무엇을 얻고 싶어하는 지를 분명히 인식하는 것이 첫째다. 아울러 상대가 처한 상황과 우리측과의 문화적, 역사적 차이를 이해해야 한다.
만약 특정 이슈에 대한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졌다면 일단 제쳐두고 합의 가능한 사안부터 풀어나가는 것도 방법이다. 그러다 보면 큰 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기도 한다. 이번 회담이 한반도와 미국 중국 등 주변국이 모두 무언가를 얻는 유익한 결과를 낳기 바란다”
유성식기자 ssyoo@hk.co.kr
입력시간 2000/06/09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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