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의 근로시간 단축 요구가 거세다. 노동계의 요구는 설득력이 있고 광범위한 지지도 받고 있다.1999년도 국제노동기구(ILO) 노동통계에 따르면 제조업 기준 우리 나라 근로자들의 노동시간은 주당 50시간. 비교대상 75개국 중 요르단(58.3시간) 이집트(57시간) 수단(56.1시간) 스리랑카(54.7시간) 마카오(51.8시간) 터키(51.2시간)에 이어 7번째로 길다. 75개국 평균 노동시간이 41.7시간이니 평균치보다 8.3시간이나 긴 셈이다.
우리 나라 근로자들의 노동시간은 1990년 49.8시간으로 처음 50시간 미만으로 떨어졌으나 외환위기가 급습한 1998년 46.1시간으로까지 줄었다가 1999년에 다시 50시간으로 늘어나 10년전 수준으로 후퇴했다. 작년말 국내총생산액(GDP) 기준으로 세계 13위인 우리 경제규모와 비교할 때 우리 근로자들의 삶의 질이 얼마나 열악한가를 말해주고 있다.
민주노총은 이 같은 자료를 토대로 법정 근로시간을 현행 주당 44시간에서 40시간으로 줄이고 주5일 근무제를 시행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도 노동계의 이 같은 요구에 상당히 전향적인 자세를 갖고 있는 듯 하다. 노동부는 법정근로시간을 현행 44시간에서 40시간으로 줄이고 주5일 근무하는 것 등을 포함한 근로조건 개선안을 마련해 9월 정기국회에 제출할 방침이고 김대중대통령도 이 같은 정부 의지를 재확인해주고 있다.
기업의 입장은 어떤가. 반대 일색이다. 그렇지 않아도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들이 근로시간이 줄어 임금부담이 무거워진다니 반가울 리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으로 돈을 벌던 개발연대가 아니다. 모든 상황이 변했다. 선진국들의 모임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으로서의 기준을 충족시키면서 후진국은 물론 다른 선진국들과 대등하게 경쟁할 수 있어야 된다. 그런데 근로시간에 관한 한 우리 기업이 대응자세는 60-70년대와 달라진 것이 없는 듯 하다. 근로시간으로 경쟁하겠다는 것부터 잘못된 발상이다. 근로시간은 짧고 임금은 높은 환경에서 확보한 경쟁력이 진짜 경쟁력이다. 저임금만 좇다간 맨날 후진국에 쫓기기만 할뿐이다.
1936년 주당 40시간 근무제를 법제화한 프랑스는 논란 끝에 올 2월부터 주35시간 근무제를 시행하고 있다. 노동시간 감축으로 1980년대 이후 계속 10%대를 유지해온 높은 실업률을 잡고 고용증대효과를 거두자는 취지의 이 제도는 경영자들의 불만 고조, 생산효과 감소 등의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4월의 실업률이 9.8%를 기록해 3년전 12.6%에서 무려 3% 포인트 가까이 떨어졌다. 실업률 10%미만은 9년만의 일이다. 실업률 하락이 노동시간 단축의 효과인지, 프랑스경제가 20여년만에 호황국면으로 접어든 탓인지 의견이 분분하지만 프랑스의 주35시간 근무제는 확산되고 있다.
주당 근로시간이 평균 38.5시간인 독일은 이미 1950년대말 1960년대초부터 주5일 40시간 근무제가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독일 노동자들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주35시간 근무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선두 선진국과 같은 수준을 바랄 수는 없겠지만 근로자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 실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근로시간을 줄이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근로시간 감축의 열쇠는 정부가 쥐고 있다. 혹시 정부의 탄력적인 자세가 노동계의 파업위협을 일시 잠재우기 위한 것이라면 방향을 잘못 잡은 것이다. 근로자의 입장에서 진지하게 대책을 마련하되 건전한 기업의 성장을 막는 족쇄가 되지 않도록 탄력성은 잃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만 근로자들이 정부를 신뢰하고 기업도 근로조건 변화에 대비할 수 있다.
편집국 부국장 방민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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