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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달열칼럼] 반성없이 前進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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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달열칼럼] 반성없이 前進없다

입력
2000.06.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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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모두가 서로에게 가슴과 마음을 활짝 열도록 합시다.”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이 남북정상회담을 앞둔 남북한 당사자에게 보낸 특별서한의 한 구절이다. 7일자로 된 이 서한에서 그는, 오는 9월 유엔본부에서 개최될 ‘새 천년 정상회담(Millennium Summit)’에 남북한 두 정상이 나란히 참석해 줄 것을 ‘강력히’ 희망한다고도 적었다. 평양 정상회담의 성공에 대한 기대와 격려가 절절한 문맥이다.

코피 아난 사무총장은 열흘 전쯤 미국의 한 대학에서 연설하면서 미국을 사납게 몰아세운 일이 있다. “세계 역사에서 가장 번영하고 성공한 나라인 미국이 국민총생산을 세계의 가난한 사람들과 나누는 데 있어서 가장 인색한 것은 매우 부끄러운 일”이므로 “가진 부(富)를 더 나누라”는 것이다.

미국은 국민총생산의 약 1%인 90억달러를 해마다 해외원조에 쓰고 있으나, 이는 서유럽 국가들은 물론 캐나다나 일본에 비해서도 낮은 비율이라고 한다. 그는 미국에 빈국들에 대한 ‘부채탕감’을 촉구했다.

부채탕감은 제3천년기(紀)의 시작인 2000년을 ‘대희년’으로 기리는 교회, 특히 교황 요한 바오로2세가 기회있을 때마다 호소하는 ‘올해의 화두’다. 그는 지난달 25일에도 “오늘날 ‘세계화’는 대부분의 가난한 나라에는 엄청난 부담을 지우는 한편 부유한 나라들에는 오히려 부를 늘려주고 있다”면서 “채권국들은 전세계 최빈국들의 외채를 적극 탕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호소의 바탕에는, 1일 1달러 미만으로 입에 풀칠하는 최빈국인구 12억명의 현실이 사실은 ‘가진 나라’들의 탐욕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주장이 깔려 있는 것이다.

요한 바오로2세는 올들어, 지난 2000년 간 교회의 잘못에 대한 반성과 참회를 문헌으로 만들어 발표하도록 주도한 교황이다. 진정한 반성없이는 역사는 전진하지도 구원받지도 못한다는 교훈이 그곳에 있다.

한국 교회도 지금 주교회의 안에 ‘역사신학위원회’를 두어, 교회사에 대한 가혹할 정도의 성찰을 정리하는 중이다. 금년 안에 문헌으로 발표할 ‘한국천주교회사의 반성과 전망’의 주요 항목들 가운데는 박해시기에서 한국전쟁 무렵까지의 근현대사가 망라돼 있음을 본다. 특히 해방이후 시기에 와서 ‘민족분단 체제의 공고화 방관’ ‘전쟁억지 노력의 포기’ ‘반공정책’ ‘매카시즘’ 등 가시돋친 소제목들이 눈에 띈다. 과거를 솔직히 드러내고, 그 반성을 토대로 나아가야 한다는 역사인식이 엿보인다.

중요한 것은 반성이다. 2000년 역사든, 우리의 짧은 당대사든 돌이켜 부끄러워함 없이는 새로운 천년기, 새로운 세기를 맞이할 수 없다는 것이 올해 2000년의 시대적 요청이다. 코피 아난 총장이 ‘한민족 모두가 가슴을 활짝 열도록’ 요청하고 있는 남북정상회담 역시, 역사와 민족 앞에서 통회하는 마음가짐 없이는 이루어져도 이룬 것이 아니기 쉽다. 온갖 책략과 계산과, 사사건건 등 가성을 따지는 ‘상호주의’와 ‘냉혹한 비즈니스’ 따위만이 앞서는 만남이라면, 55년 돌처럼 굳고 얼음처럼 차가워진 가슴은 영영 열리지도 풀리지도 않을 것이다.

서울을 다녀가는 평양 어린이들이, 그들을 보내는 서울의 친구들이 펑펑 눈물을 쏟는다고 해서 그 눈물을 ‘감성 과잉’이라 탓할 수는 없다. 평양교예단의 숨막히는 묘기에 감탄하는 실향민 어머니가 연신 눈물을 훔친다고 해서, 그것을 이상하다고 보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수상하다. 사람과 사람, 그것도 동족끼리, 만나 보니까, 가까이 다가서니까, 반갑고 또 반가울 뿐이다. 그 반가움을 확인한 눈물이다. 도무지 계산적으로 따질 일이 아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평화상 후보로 오를 때마다 “딱 한 사람 손에 달렸다”고, 절반쯤 비아냥댄 일이 있다. 전적으로 김정일 국방위원장 손에 달렸다는 뜻이다. 그런 일이 있으리라고 믿지 못했던 것인데, 지금 그 일이 기적처럼 일어나고 있다. 그럴수록 침착하고 냉철해야 함은 물론이지만, 어느 작가의 말대로 지금은 ‘침착한 것도 분에 넘치는’일인지 모른다.

우리가 지금 할 일은 멀고도 험한 첫 걸음을 떼는 김대중 대통령의 여정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다. 그의 등 뒤에 민족 전체의 성원이 있다면, 그리하여 올가을 뉴욕의 새 천년 정상모임에도 당당한 ‘둘의 참여’가 이뤄지도록 전진한다면, 분쟁과 평화의 두 당사자에게 함께 돌아가는 노벨평화상을 받는 아주 사소한 성과(?)도 가능할지 모른다.

/본사 주필 정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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