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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老감독 설자리가 좁아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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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老감독 설자리가 좁아져요"

입력
2000.06.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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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용감독 '침향' 1년만에 개봉"관객과 너무 너무 만나고 싶었다”고 했다. 1986년 검열파동에 휘말린‘허튼소리’이후 14년만이다.

노(老) 감독은 그때 14군데나 가위질을 당하자 “내가 영화 안한다고 죽냐”며 메가폰을 집어던졌다. 그러나 정말 죽을 것 같았다.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영화.

참다못해 4년전 일본까지 가서 ‘사랑의 묵시록’을 찍었다. 한국에서 그 나이의 감독은 더 이상 존재가치가 없는 것으로 취급된지 오래. 젊은이들이 기획하고 만들고 보는 영화에만 돈이 몰리고, 극장은 자리를 준다.

그것이 현실이다. 한국에서 노 감독이 영화를 만드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지는 그들만이 안다. 9일 자신의 영화 ‘침향(沈香)’의 개봉을 김수용(71) 감독은 이렇게 말한다.

“아무도 관심이 없다. 아예 제작 자체가 봉쇄돼 있다. 애면글면 만들었다 해도 개봉할 수가 없다”고. 그 말고도 최근 조문진(65 )감독이 ‘만날 때까지’를, 고영남(65) 감독은 ‘그림일기’를, 이두용(58) 감독은 ‘애’를 만들었다.

그러나 ‘그림일기’만이 겨우 극장에, 그것도 흥행에 참패해 잠깐만 걸렸을 뿐이다. 그러고 보면 든든한 제작자가 뒤에 있는 임권택 감독은 행복하다.

세태 탓일까, 아니면 그들 자신의 문제 때문일까. 김 감독이 보기에는 양쪽 모두이다. “노감독들은 스스로 시대 흐름과 역량을 축적하지 않아 갈수록 낡고 초라해지고, 젊은 영화인들은 이제 그들의 손길은 고루하다고 ‘빗자루로 쓸어버리듯’ 무시한다”는 것이다.

작품성이 떨어지니 투자할 사람이 없고, 그러다 보니 갈수록 기회가 없어져, 더욱 가난하게 영화를 만들고, 자연 흥행성도 뒤지고. 김 감독의 ‘침향’도 이런 ‘악순환’속에서 어렵게 탄생했다.

“재작년 영화진흥공사(현 영진위) 판권담보융자 3억원을 받았으나 나머지 제작비 1억6,000만원이 없어 고생하다 서울극장 측의 지원으로 작년 2월 겨우 촬영을 마쳤다.

산 너머 산이었다. 이번에는 광고, 마케팅 비용이 없어 1년 넘게 기다려야 했다. 다행히 비디오 판권이 팔려서 개봉하게 됐다”

당연히 인기배우는 엄두도 못냈다. 그러나 김 감독은 ‘침향’에 만족한다.

요즘 젊은 관객들이 그것을 관객이 알아주리란 자신은 없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했고, 원숙하지는 않지만 배우들의 연기도 실망스럽지 않았다. 영화에서는 자연도 배우와 같은 존재라고 생각해 욕심껏 제약없이 카메라에 담았다. 더구나 탐욕으로 악취가 나는 인간과 비교하기에 더없이 좋은 재료가 아닌가. 열 번이나 정일성 촬영 감독과 작업하면서 그의 욕심을 제약한 것이 미안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1958년 ‘공처가’로 데뷔했으니 42년의 영화인생이다. ‘침향’이 109번째 작품. 그가 아끼는 영화는 ‘유정’(66년) ‘토지’(74년) ‘망영의 늪’(80년) 등 주로 인간의 만남과 운명, 삶의 굴곡을 다룬 것들이다.

의외다. 사람들은 각종 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갯마을’(65년) ‘안개’(67년) ‘만추’(81년)를 더 기억하는데. “어법이 있듯 우리세대에게는 영화문법이란 것이 있다.

젊은이들은 이것을 무시한다. 그렇다고 그들을 따라가야 하나. 우리에게는 오랜 세월 지켜온 한국인의 정체성, 정서가 있다. 오토바이로 질주하는 시간이 있다면, 천년의 세월이 가라앉은 시간이 있듯이”

그는 그 가치를 인정할 아름다운 돈이나 독지가를 기다린다. 안되면 자신의 돈을 털어서라도 110번째 작품을 만들 결심이다.

벌써 구상까지 해두었다. 7일은 그가 위원장으로 있는 영상물등급위원회가 발족한지 1주년. 남은 2년의 임기동안 고고학자의 과거와 현재의 두 시간을 그릴 ‘까만 눈이 내린다’의 시나리오를 완성할 생각이다.

“감독에게 영화 만드는 일보다 즐거운 것이 있나”라고 반문하는 김 감독. 어디 그 혼자만의 얘기일까. 누가 그들의 가장 큰 즐거움을 앗아가고 있는 걸까.

순수한 영환의 향기를 찾아…

● 침향

침향(沈香)은 천년의 긴 세월을 맑은 강물속에서 잠겨있던 참나무 고목이 가진 향기. 이 그윽한 향기가 왜 가장 값지다는 인간에게서는 나지 않는 것일까.

영화는 군복무를 마치고 나온 소설가 찬우 (이세창)를 통해 그 향기를 찾고자 한다.

역설적이게도 그 향기는 육체는 망가지고 타락하고 더러워졌지만 순수한 사랑과 영혼을 가진 두 여자, 어린 창녀인 선희(이정현)와 애인의 자살로 스스로를 포기하고 산장에서 폭력적인 벌목공의 여자로 사는 진경(김호정)에게서 발견한다.

시간은 분할된다. 자살한 선희와의 찬우의 과거와 그 과거를 더듬으며 만난 진경이와의 현재, 자동차 경주처럼, 주인공의 과거 소설‘스피드’처럼 질주하는 탐욕의 시간과 침향을 만든 정지된 듯한 순수의 긴 시간. 두 시간의 연결로 인간의 근원적 가치들을 탐구하는 김수용 감독의 색깔은 여전하다.

산과 물과 나무의 아름다운 영상, 불교철학과 의식도 주제를 위해 반복된다. 그것이 인물들과 매끈하게 조화를 이루지는 못하지만 영화의 맛을 깊게 한다.

몇몇 정사장면은 다분히 의도적이다. 젊은 관객을 의식한 것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타성 약한 배우, 감각보다는 서사구조, 소재가 젊은이들의 것은 아니다.

구효서의 소설 ‘나무 남자의 아내’를 ‘만추’의 김지현이 각색했다.

오락성★★★ 예술성★★★ (★5개 만점 ☆은 절반, 한국일보 문화부 평가)

이대현기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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